아지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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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호/수필가

기다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봄은 어김없이 우리 곁에 다가온다. 정밀한 순환, 그게 자연의 섭리다. 그럼에도 우리는 영등철의 한기를 애써 삭이며 복수초와 매화가 서둘러 개화하기를 갈망한다. 아마도 따스한 기운과 함께 덤으로 싣고 오는 왕성한 생동감이 그리워서이리라. 그리고 그 그리움엔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희망이 담겨 있다.

 

그것은 부활이 아니다. 봄은 소생(蘇生)이다. 겨우내 앙상한 가지만 남아 거의 죽어간다고 여기는 그 순간 나무는 살포시 새순을 밀어낸다. 식물뿐이랴.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도 기지개를 켠다. 비로소 만물이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끈질긴 생명력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

 

개인의 취향에 따라 계절에 대한 호불호(好不好)가 다름은 당연한 이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봄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날이 천연의 색을 더해가는 들녘, 화사한 치장을 뽐내는 정원, 해녀의 숨비소리마저 정겨운 바다. 어느 하나 나무랄 것이 없다.

 

‘황무지’의 작가 T.S. 엘리엇에게는 ‘잔인한 4월’일지 몰라도, 바야흐로 세월은 호시절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정유년의 따스한 봄볕 이면에는 필시 난세의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는 듯하다.

 

실존철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니체는 “망각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어버리기 때문이다.”라 말한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 국정농단 사건, 대통령 탄핵 등과 같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쉽게 잊히지 않을 일들도 있다. 몸에 난 상처라면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만, 정작 대다수 국민들이 겪는 정신적 충격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시나브로 허탈이나 울화(鬱火)가 되어 되돌아올 것이 자명하다. 되새길수록 안타까운 일이다.

 

봉오리만 맺혀 약을 올리던 동백이 활짝 피어 보는 이를 즐겁게 하더니, 며칠 새 떨어져 화단이 지저분해 보인다. 역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허언은 아닌 듯하다. 문득 이형기 시인의 ‘낙화’ 서두가 떠오른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멍하니 씁쓸함이 고인다.

 

이제 조기 대선이 눈앞이다. “승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 했다. 정치인들은 부디 민생을 우선시하고, 유권자들은 현명한 선택을 하여 아지랑이 따라 희망 대한민국의 진정한 봄이 도래하기를 염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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