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산다는 것
느리게 산다는 것
  • 제주신보
  • 승인 2017.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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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택. 전 탐라교육원장/수필가

달팽이와 소는 느림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예전에, 소로 밭을 갈아 본 경험이 있다. 뚜벅뚜벅 소는 서둘지 않고 자신의 할 일만 해나간다. 그런 행동이 못마땅하여 회초리를 휘두르고, 고함을 지르며 재촉해 보았지만 별로 동요함이 없었다. 그렇다고 일을 회피하거나 뜻을 거역하는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나도 이내 마음을 추슬러 소와 한마음이 된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는 하나 일을 빨리 해치우려고 급하게 서두르는 인간을 얼마나 비웃었을까. 어쩌면 느리지만 주어진 과정을 거치면서 일을 해 가는 게 진정한 삶이라는 것을 몸소 실천해 보여주는 것은 아닐는지.

느리다는 사전적 의미는 ‘움직이거나 일을 해내는 속도가 더디다.’다. 느림과 급함의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게으르다는 말과도 별개 문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느리다는 것은 차분하게 순서를 밟으며 책무를 완수해 나간다는 것일 게다.

청산도에 간 적이 있다.

도청항에 닻을 내리자 광장에 우뚝 솟은 달팽이 동상이 눈길을 끈다. 빠르게 변화하며 사는 도시인의 삶과 달리 자연과 더불어 공존하면서, 그 지역의 먹을거리와 독특한 문화 속의 삶을 지향하고 있었다.

청산도는 1999년 이탈리아 소도시 오르비에토에서 슬로푸드 먹기와 느리게 살기를 표방하면서 시작한 것이, 이곳까지 바람이 불어 2007년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선정된 섬이다.

‘슬로길’,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절로 발걸음이 느려진다 하여 붙여진 그 길을 따라 15분쯤 걷자 당리마을이 나온다. 언덕 위에 영화 서편제와 봄의 왈츠를 촬영한 세트장이 마련되어 있다. 진도아리랑의 구성진 가락에 맞춰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걸어오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돌담길을 자분자분 걷노라니, 느림의 섬 청산도의 아름다움이 서편제 가락을 타고 잔잔하게 흘러든다.

고샅길 따라 마을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곳엔 낭만과 여유로움이 넘쳐난다. 구들장논길로 접어들자 농토와 물이 부족한 섬에서 척박한 땅을 논으로 일구면서, 역경을 이겨낸 섬사람들의 억척스런 몸부림에 가슴 뭉클하다. 푸른 바다와 산, 느림으로 한데 어우러진 섬사람들의 삶. 평화로움 그 자체다.

일정을 마치고 피로를 풀기 위해 사우나실로 들어갔다. 모래시계를 들여다본다. 모래시계는 허리가 병목현상을 일으키게 만들어 그곳을 빠져나오게 구조화되었다. 모래가 저 좁은 곳을 언제 다 빠져나올까 답답하고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여유 있는 듯 서두름 없이 차례를 기다리며 질서정연하게 빠져나온다. 모래시계 속에 엄존하는 규율과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현상을 지켜보노라니, 변화에 느긋하지 못하고 부질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낯이 뜨겁다.

차를 타고 밖에 나가면 짜증이 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도로 위 차들은 시도 때도 없이 경적을 울려댄다. 1, 2초도 못 참는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도 마찬가지다. 안전을 위하여 멈출 때까지 자리에서 기다리는 안내방송을 해도 막무가내다. 벌써 승객들은 일어나 짐을 챙기고 있다. 우리가 자랑했던 빠름과 조급함이 오히려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요즘 느리게 살기운동이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몸과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절한 변화가 필요하다. 슬로운동의 전도사 칼 오너리도 “느린 것이 아름답다.” 라고 했다.

이제 삶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행복한 삶을 위해 안단테로 돌아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