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 내리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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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토일렛(toilet)이란 단어가 영국에서 상류층을 움찔 놀라게 한 유명한 사례가 있다. 2013년 7월 왕세손비 케이트 미들린(Kate Middlen,1982~)이 첫 아들을 낳아 온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갔지만, 그녀는 연애시절 한때 윌리엄 왕자(Prince Williaw,1982~)와 헤어지기도 했었다. 수년 전, 그들의 결별에 ‘토일렛’으로 상징되는 계층 격차가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는 한 일간지 (2007년 4월 한국일보)의 보도가 있었다.

“윌리엄 왕자가 최근 애인 케이트 미들린과 헤어진 것은 상류층과 평민이라는 계층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도 이유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따르면 미들턴의 어머니는 왕실 인사들과의 모임에서 상류층이 즐겨 쓰는 ‘화장실(bathroom)’이라는 말 대신 ’변소(toilet)’라는 단어를 써서 ‘귀하신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고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다.”

영국에서 변소와 화장실이 엄연히 구분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 준 대목이다.

우리의 경우는 일찌감치 w.c(water closet)이라 하다가 나중 토일렛으로 보편화되는 과정을 거쳐 가며, ‘변소(便所)’라는 말은 온데간데없다. 말 그대로 ‘(크고 작은) 볼일을 치르는 곳’이라는 뜻이라 수준이 바닥을 드러냈다. 영국의 상류층에서는 화장실이 ‘bathroom’, 미국에서는 ‘restroom’으로 변소와는 확연히 다른 공간이다. 그래서 의당 말도 다르다. 변소란 말이 사라지면서 나온 화장실이란 간판에 놀라던 시절이 있었다. 분 바르면서 얼굴을 곱게 치장하는 게 화장(化粧) 아닌가. 실제 화장에 필요한 시설과 도구를 갖추고 있는 방을 화장실이라 해야 맞다. 우리 현실의 화장실은 그와 거리가 먼 것이라 어리둥절할 수밖에….

한 여류수필가의 인도 기행문을 읽다 경악했다.

“인도에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기억은 몇 시간을 달려도 휴게소는커녕 화장실이 없다는 것이다. 뜨악한 것은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문화가 아닌 문화, 노상방뇨를 하라는 것이다. 난색하며 서로를 바라보는데, ‘처음에 거북하겠지만 한국에 가면 그리워질 겁니다.’라는 가이드의 재치에 다들 웃음을 띠고 있다.” 인도의 매력의 하나라며, 열악함을 낭만으로 승화시킨 스토리텔링.

두어 시간 뒤 드디어 실제상황에 맞닥뜨렸다는 것이다. 어디에 건물 하나도 없는 사방팔방이 탁 트인 도로변에 달리던 버스를 세우더니, 자유롭게 일을 보고 오라지 않는가. 급하게 줄 서 나가는 한국인들.

어디 이럴 수가. 남녀 불문, 볼멘소리로 툴툴대던 그들이 어딘가로 깊숙이 가고 있었다. 저 건너 둑을 넘고 숲을 지나 나무 한 그루에 의지해 바지를 내리는 풍경이라니. “그 경험의 스릴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라 했다. 인도는 희한한 나라다.

십수 년 전, 중국의 화장실은 역겨웠다. 코 막고 눈을 감게 했다. 많이 개선됐겠지만 소변 칸마저 지린내로 퀴퀴했다. 명색 공항인데, 국제 망신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화장실은 몇 년 새 현저히 달라졌다. 화장실답다. 각급 기관, 공공시설, 크고 작은 업소 어디나 고루 깔끔해 ‘아름다운 화장실’ 수준이다. 벽화 몇 점이 걸렸는가 하면, 조그만 화분도 놓여 있다. 한국 화장실 문화의 진화는 산업화의 기적 뒤가 무언지를 보여 주듯 놀랍다.

돼지우리를 겸하던 제주도 특유의 ‘통시’를 아잇적에 겪었던 세대로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화장실 문화는 이제 선진국 수준이라 해서 손색이 없다. 긍지를 갖게 하는, 우리 주변엔 이런 자랑스러운 일들도 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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