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와 교사, 그리고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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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한국만큼 교수가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를 누리는 나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학문의 세계에서 어느 한 분야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육자들이지만 전문가로서뿐 아니라 지식인이자 사회 지도층으로 후한 대접을 받는다.

역대 정권에서 장관이나 총리를 기용할 때 인재 은행으로 생각하고 으레 한번쯤 들여다보는 곳이 학계다. 강단을 박차고 나와 금배지를 다는 교수들도 적지 않다. 정부나 정치권의 후방지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오는 5월 대선을 앞두고도 교수들을 자기편으로 끌어 모으는 작업이 한창이라는 소문이다. 어떤 유력 후보 진영은 포럼이니 자문기구니 하는 각종 단체를 만들어 무려 1000여 명의 교수를 끌어 모았다니 본말이 전도된 느낌마저 준다. 비판적인 시각을 중시하는 지식인 사회도 언제부터인가 권력과 한통속이 돼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정치교수라는 딱지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세상이 됐는지도 모른다.

학문을 출세의 발판으로 생각했던 선조들의 영향도 클 것이다. 교수들을 정부나 정치권에 끌어들이는 걸 인재 등용이나 발탁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것만 보아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세상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교수들이 적지 않은데도 국민들의 시선은 아직도 호의적이다.

그렇다면 뉴질랜드 사회는 어떤가. 한국 사회와 달리 뉴질랜드에서는 정치권에 진출하는 언론인이나 교수들이 많지 않다. 교육자 중에서는 초·중·고에서 교편을 잡았던 교사들이 훨씬 더 많다. 현재 국회의원 120명 중 10명이 넘는다. 대학에서 강의를 했던 사람이 기껏해야 2~3명인 것과 비교하면 꽤 큰 차이다. 노동당 정부를 이끌었던 헬렌 클라크 전 총리가 잠시 대학 강사를 지내기는 했지만 그보다 앞서 뉴질랜드 최초 여성 총리를 지낸 제니 시플리는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다.

교사들이 뉴질랜드에서 정치권에 많이 진출하는 건 국민들이 그만큼 원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국회의원 감으로 가장 좋은 직업군을 알아보는 설문조사를 했을 때 교사가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 뉴질랜드 사람들이 국회의원으로 선호하는 직업군은 경찰과 의사였다. 한국 정치권에서 적지 않은 수를 차지하는 법률가와 언론인들은 최하위 권에 간신히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박사니 전문가니 하는 교수들은 등수에도 없었다.

이유는 정치인의 역할에 거는 기대가 한국과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조사에 응한 사람들은 교사와 경찰 출신들이 어떤 직업군보다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날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특히 교사들에 대해서는 제멋대로 구는 10대들을 다루었던 경험이 정치판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를 가장 먼저 내세웠다. 정치인과 공직자들의 역할이 국가와 국민에 대한 봉사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권력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운 덕목이다. 권력에 맛을 들이면 아무리 선거 때 공복이 되겠다는 약속을 수백 번 해도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리게 되는 법이다.

고등학교 교사 출신의 뉴질랜드 정치인은 교사들이 다양한 사회계층의 사람을 만나는 것과 정치인들의 지역구 활동은 비슷한 점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의정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자질로 중재와 자제력을 꼽았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정치인들 중에도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소 발언이 풍자적이지만 여러모로 음미해볼 만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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