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소깍, 남쪽

                                        -강 영 은- 

 

소가 드러누운 것처럼 각이 뚜렷한 너를 바라보는

내 얼굴의 남쪽은 날마다 흔들린다

 

창을 열면 그리운 남쪽,

살청빛 물결을 건너는 것을 남쪽의

남쪽이라 부른다면

 

네 발목에 주저앉아 무서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무서움보다 깊은 색, 살이 녹아내린

남쪽은 건널 수 없다

 

눈이 내리면 너도 두 손을 가리고 울겠지,

눈 내리는 날의 너를 생각하다가

북쪽도 남쪽도 아닌 가슴팍에 글썽이는 눈을 묻은

젊은 남자의 비애를 떠올린다

 

흑해의 지류 같은 여자를 건너는 것은

신분이 다른 북쪽의 일,

 

구실밤잣나무의 발목 아래 고인 너는 따뜻해서

용천수가 솟아나온 너는 더 따뜻해서

비루한 아랫도리, 아랫도리로만 흐르는

물의 노래

 

흘러간 노래로 반짝이는 물의 살결을

무어라 불러야 하나

 

아직도 검푸른 혈흔이 남아 있는 마음이

무르팍에 이르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독한 사랑처럼

먼 바다로 떠나가는 남쪽

누구에게나 전설은 있지, 중얼거려 보는

내 얼굴의 남쪽

 

   
▲ 백주순 作 쇠소깍-눈물로 세월을 마중하다.

쇠소깍은 원래 소가 누워있는 형태라 하여 쇠둔이라는 효돈마을의 지명이었다. ‘쇠’는 ‘소’ ,‘소’는 ‘웅덩이’,‘깍’은 ‘끝’을 의미한다.

 

하효동과 하례리 사이를 흐르는 효돈천(孝敦川)을 가리키며 한라산 정상에서 발원한 물이 ‘산 벌른 내’를 지나 돈내코, 효돈천을 흘러 바다로 섞여드는 곳이다.

 

담수와 해수가 만나는 지점에 용출수가 솟아 깊은 소沼를 이루어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검푸른 물빛의 자태가 심연 속으로 끌어당기는 듯하다.

 

   
▲ 김정희 시 낭송가의 시 낭송 모습.

부잣집 무남독녀와 머슴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간직한 쇠소깍은 기암괴석과 계곡 양쪽으로 희귀수종인 담팔수나무 등 상록활엽수림이 울창한 숲을 이뤄 유네스코 지정 세계 생물권보전지역이다.

 

주말이라 복닥거리는 관광객들 틈에 바람난장이 펼쳐졌다.

 

붉은 비단 꽃신을 바위에 올려놓고 주인집 무남독녀 차림의 김정희님이 강영은 시인의 쇠소깍, 남쪽을 낭송했다. 바위 위에서 막 뛰어내리는 꽃잎 한 송이이듯 붉고 푸른 천이 허공을 가르다 물결 속으로 자지러진다. 때마침 서울에서 내려와 난장 팀에 참석했던 강영은 시인의 얼굴이 어린 날로 돌아가는 듯 촉촉해진다.

 

서걱이는 검은 모래를 밟으며 고성옥 명창님의 ‘제주 아리랑’을 신명나게 불렀다.

 

몇 마디 전해져 내려오던 것을 명창님이 정리하셔서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애쓰고 계신다.

 

아리랑 첫 구절부터 흥이 넘어간다.

 

   
▲ 고성옥 명창이 ‘제주 아리랑’을 선보이는 모습.

멀리 보이는 지귀도도 관객으로 합류하여 서귀포 칠십리, 봄날은 간다 까지 부르고 나니 노래 구절 말마따나 봄날이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낫네 / 아리랑 고개로 날만 냉겨 다오

냉겨줄 모(아래아)음은 가이간절 나도/ 시어머니 등살에 못만 냉겨 준다.

 

 

총 4절로 이루어진 아리랑은 제주신보 홈페이지에서 감상해 보시길 바란다. 명창님의 구성진 가락에 귀가 한껏 호강 할 것이다.

 

자리에 참석하셨던 한기팔 시인님의 인생에 대한 좋은 말씀까지 듣고 나니 노시인의 눈매가 한층 더 깊어진다. 쇠소깍 물 아래 내 영혼의 하루쯤 묻어 두며 졸시 한편 내려놓는다.

 

   
▲ 바람난장 가족들의 모습.

산 벌른 내

 

벌러진건 단단한 그 무엇이

쩌억 소리가 나게 갈라져 버린 것

한라산 서남쪽을 벌러 버린 물줄기가

쇠소깍을 지나 서귀포 앞바다로 치달린다

그곳에 있다는 못 이룬 사랑의 전설보다도

산을 벌러 버리면서 달려 내려 왔다는

물줄기의 그 포효가 더 좋아

얼마나 신나게 내달렸을까

구상나무 지나 바위덩이를 지나 사슴의 발콥사이를 지나

연분홍 철쭉 따위, 아그배꽃 따위 다 쓸어버리고

우르릉 우르릉 내리 꽂으며

그 수심이 삼켜버린 별빛 같은거 달빛 같은거 새소리 같은 것들이

구실잣밤나무 아래 담팔수 아래 캄캄하게 떨어진다

강물아래 잠긴 나무의 늑골, 풀들의 늑골들이 물살에 쓸려

아가미로 부레로 훑어진다

산 벌른 내 뒤에 끌려온 모든 꽃잎이란 꽃잎들의 발목이

웅덩이 끝이라는 소깍에 잡아 채인다.

 

내 안에 너 든 순간이다.

 

※다음 바람난장은 22일 조천 연북정에서 오전 11시에 진행된다.

 

글-강영란

노래-고성옥 명창

그림-백주순

사진 –허영숙

시 낭송-김정희

음악·공연감독-이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