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잇 노트의 탄생 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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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철 제주대학교 화학·코스메틱스학과 교수

미국 3M사 스펜서 실버(Spencer F. Silver) 박사는 접착력은 좋지만 쉽게 떨어지는 특성을 지닌 물질을 개발했다. 이 물질은 잘 붙이기 위한 접착제이기 때문에 잘 떨어지게 되어 실패작일 것 같다.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 같던 이 접착제는 ‘포스트-잇 노트(post-it notes)’라는 명품을 탄생시켰다.

 

이의 출현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활의 편의를 제공했다. 이것을 써본 사람들은 만족하기 시작했고, 사무용품의 대명사인 스카치테이프의 판매량을 추월한 세계적 상품으로 등장했다.

 

3M사의 포스트-잇 노우트는 문자를 통한 간단한 의사 전달과 개인적인 메모 방법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1980년 미국에서 발표한 ‘붙기는 하지만 너무 세게 붙지 않는’ 이 기록장은 무수한 사무실과 자동차와 가정에서 다양한 용도에 사용되고 있다.

 

실버 박사는 아크릴레이트(acrylate) 고분자를 특수한 방법으로 합성하면 가교결합을 한 미세한 구(球)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 물질을 용매에 분산시켜 종이에 뿌리면 용매가 증발한 후 성긴 단층이 생긴다.

 

그 표면을 주사전자현미경(scanning electron microscopy) 사진으로 관찰하면 자갈처럼 매우 불규칙하다. 그러나, 셀로판테이프의 접착제 표면은 잘 마무리된 포장도로처럼 균일하고 평탄하다.

 

그래서 실버 박사의 작품은 흥미롭고 의미있는 것이다. 이 접착제의 표면은 울퉁불퉁하여 접점의 수가 작기 때문에, 접착력은 있으나 오랜 기간 동안 기능을 발휘할 만큼 강하지는 않다.

 

이 접착제를 처음 발명했을 때 실버 박사는 이것의 용도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3M사의 동료들에게 이 새로운 발견에 대해 널리 알리고 응용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이와 동시에 그는 그 접착제의 성질을 향상시키는 실험을 수 년동안 계속 진행했다. 이처럼 과학자의 불굴의 정신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삶의 질을 개선시킬 수 있다.

 

포스트-잇 노트에 관한 아이디어는 1974년에 탄생했다. 어느 일요일 3M사의 아트 프라이(Art Fry)가 교회의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동안 찬송가에 꽂아 둔 북마크(bookmark)가 자꾸 떨어졌다. 그는 순간적으로 실버 박사의 접착제를 생각함으로써 포스트-잇 노트가 세상에 태어났다.

 

프라이는 그 후 3년간 포스트-잇 노트의 생산에 관련된 모든 문제점을 해결하였다. 1977년에는 3M 본사에서 사용할 만큼의 제품을 생산하였고, 이 회사 직원들은 그것의 다양한 용도에 금방 중독되었다. 이 제품은 현재 25여 가지 모양과 62여 가지의 색상으로 출시되고 있다.

 

이 제품을 처음 발표한 이후 3M사는 그것의 용도에 관련된 놀라운 이야기들을 다수 수집했다.

 

예를 들면 어떤 항공사가 Las Vegas 지상 승무원에게 보일 목적으로 비행기 앞 부분에 포스트-잇 노트를 붙였다. 그런데 그것을 떼어내는 것을 잊고 Minneapolis까지 갔다.

 

이것은 몇 번의 이·착륙과 - 49 ℃에서 시속 500 마일의 속도로 비행한 시간 동안 잘 지탱하고 그대로 붙어 있었다. 또한 어떤 집 앞에 붙여 둔 포스트-잇 노트가 시속 160 마일의 태풍 휴고(Hugo)에도 무탈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스트-잇 노트는 일상사에서 의사를 전달하고, 어떤 사실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확실한 변화를 제공했다. 이처럼 일상생활에 대변화를 야기시킨 접착제 이면에는 화학과 발상 전환이 호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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