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길을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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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철 제주대 교수 중어중문학과/논설위원

벌써 40년 전의 일이다. 돌아가신 아버님은 등산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종종 어머님께서 싸 주신 도시락과 집에서 담근 술을 가방에 넣고 아버님을 모시고 산에 오르곤 했다. 산에 오를 때는 혹 아버님께서 많이 마시면 위험할 것 같아, 내가 많이 마셔버리곤 했다.

산에서 내려올 때면 나는 기분이 좋아 알딸딸한데 아버님께서는 부족하셨던지 “재철아! 막걸리 한 잔 더하고 갈까?”하시며, 허름한 막걸리 집을 찾아 물고기에 무를 넣고 끓인 찌개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곤 했는데, 집에 돌아오면 어머님께서는 부자가 함께 취한 것을 보시고 “당신은 등산한다고 아들 데리고 가서 술을 먹여서 데려옵니까?”하고 잔소리를 하시곤 했다.

언젠가는 방학 때 절에 있다가 집에 내려오면서 절 옆의 농주집에서 막걸리를 받아 아버님께 드렸더니, “고맙구나. 그런데 술은 산행 후에 마시는 것이 제 맛이지…”하셨는데, 며칠이 지나 아버님께서 직접 절을 찾아오셔서 “농주집이 어디야?”라고 물으셨고, 나는 아버님을 모시고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시다 때가 되어 모시다 드렸는데, 한참 내려가다가 아버님께서 “이제 올라가거라.”하셨다. “조금만 더 가겠습니다.” “아니다. 너와 나는 부모자식지간이지만 너는 너의 길이 있고 나는 나의 길이 있단다. 인생도 이와 같은 것이다. 이제 너는 너의 길로 올라가거라. 나는 나의 길로 내려가마.”하셨다.

어려서는 아버님께 인생을 배웠는데, 훗날 나도 아버님께서 날 가르치신 대로 아이를 가르치곤 했다.

아이가 갓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즈음, 어느 해 추석 때, 온 식구들이 고향에 모여 점심 식사를 하고 가까운 곳으로 등반을 간 적이 있다.

산이라고 하기 에는 너무 낮고, 그렇다고 언덕이라고 하기에는 좀 높은, 그래서 왕복 1~2시간이면 충분히 돌아올 수 있는 곳으로 등반을 떠났는데, 내려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며칠 전에 비가 많이 와, 그것 때문에 풀이 자라, 길을 덮어버렸기 때문에 그만 내려오는 길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가다보면 다시 지났던 길로 돌아오곤 하였기 때문에 특단의 조치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산꼭대기에서 물이 흘러 내렸을 법한, 돌이 많은 곳을 따라 내려오기로 하고, 무리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의 딸은 내 바로 뒤를, 그리고 그 뒤로 어린 조카와 형님들을 따르게 하고, 맨 앞에 서서 때로는 풀을 헤치고, 때로는 약간 가파른 낭떠러지는 뛰어내리며, 허겁지겁 내달렸다.

집에 남아 있던 식구들이, 119에 연락하여 막 헬리콥터를 띄우려던 차에 다행히 무덤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무덤 속 망자의 후손들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 내려올 수 있었다.

한바탕 두려운 산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딸아이는 몹시 원망스러운 눈으로 날 쳐다보며 말한다. “아빠, 내 아빠 맞아?” 아이가 뛰기에는 너무 가파른 곳에서, 단 두 차례 손을 잡아주었을 뿐, 앞에서 무작정 내달렸으니, 겁이 났던 모양이다. “너를 안고 왔으면 이 시간에 내려올 수가 있었겠니?”라고 말하였지만, 아이는 씁쓸하게 쳐다 볼 뿐이었다.

그래, 내가 네 아비지만, 내가 너의 길을 대신 갈수는 없지 않겠니? 필요하면 간혹 손을 내밀 수는 있을지언정, 너의 길은 네가 홀로 가야한단다.

이제 너희들도 인생의 대장정 앞에 서서 너희들의 길을 가야한다. 무엇을 해도 좋다. 그렇지만 반드시 너희가 얻은 이름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교수라는 자가 허구한 날 각종 선거에 끼어들어 자리나 탐내고, 사교한답시고 술이나 골프로 시간이나 축내다가, 남들 다 쓰는 논문 한 편 못 써 승진도 제 때 못하고, 기껏 생각해낸 것이 제자 논문이나 강탈하는 거짓된 인생을 살겠니? 아니면 노력한 만큼만 가져, 부족하지만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처신할 수 있는 인생을 살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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