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천 돌생기 호(아래아)나

                                             -강 영 란

한라산 어디서부터 물결에 같이 굴러왔으리라

내 손에 들린 돌생기 호(아래아)나

무심코 툭 던지니 동그란 파문

저쪽 편에 있던

그날 그 아이 손등에 가 닿았을랑가

마음에 가 닿았을랑가

이불빨래 하느라 말아 올린 주름치마

물방울이 튀어 얼룩무늬 자국을 남겼던

그 아이 나를 보고 웃었던

귀퉁이 부서진 조개껍데기 같은 것들이

깨어진 병조각 같은 것들이 내 발 아래

물의 이빨로 반짝이던 그날

급하게 잡아 내린 치마가 물속에 다 젖어 들던

내가 집어던진 자그마한 돌생기

홍예교 아래로 물수제비 날리는

산짓물 아래 다시 돌아 온 은어비늘로 반짝이는

 

   
▲ 김해곤 作 산과 바다, 사람이 노니는 곳.

산지천은 한라산 북사면 720m 지점에서 발원하여 제주시의 아라동, 이도동, 일도동을 흘러 건입동의 제주항을 통해 바다로 나간다. 조선시대 제주성 축성 과정에서 내(川)을 성 밖에 두었으나 왜구가 침략해 성을 포위하자 식수조달이 어려워 식수확보를 목적으로 성안으로 끌어들여 남수구와 북수구가 축조되고 수로가 생기면서 사람과 물자이동을 위해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인 홍예문이 설치됐다.

 

탐라문화의 발상지라 할 만큼 하천 주변으로 많은 유적지를 가지고 있는 산지천은 동쪽 삼성혈을 정점으로 제주향교, 만경대, 공신정, 삼천서당, 취한당이 있고 서쪽으로는 광양당, 귤림서원, 오현단, 남수각, 지주암 등의 많은 유적이 숱한 이야기를 간직한 채 자리 잡고 있다. 언제나 지하에서 맑고 풍부한 물이 솟아나와 어떤 가뭄이 들어도 마르는 일이 없어 제주시 상수도 시설 이전에 성안 사람들은 이 물에 의지해 살았다.

 

일제 강점기인 1927년 8월 7~8일 이틀간의 대홍수로 남· 북수구와 홍예문이 허물어졌다.

 

산업화가 진행되던 1960년대에 주택이 밀집되면서 생활 하수와 쓰레기로 오염되는 문제가 생기자 1966년 복개되었다. 복개된 후에도 계속되는 오염으로 1995년부터 문화와 역사의 모습 그대로 되살리기 위한 복원사업을 시작하여 2002년 맑은 물이 흐르는 현재의 산지천으로 복원되어 은어가 돌아오고 음악회, 전시회가 열리는 산지천으로 탈바꿈되었다. 육지를 잇는 관문이어서 의녀 김만덕 객주터가 위치해 있던 곳도 이곳 산지포였다.

 

김만덕기념관, 객주터, 제주항여객터미널이 들어서고 서울 청계천 복개공사의 롤모델이 될만큼 도시 재생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았다.

 

이번 난장에는 강문규 한라생태문화연구소장님과 고성옥명창님이 참석해 주셨다.

 

   
▲ 사진원쪽부터 1. 김정희 시 낭송가의 시 낭송 모습, 2. 바람난장에서 고성옥 명창이 제주아리랑을 선보이고 있다, 3. 강문규 한라생태 문화연구소장이 산지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문규 소장님이 산지천에 대한 설명을 하기 전 “미라보 다리 아랜 세느강이 흐르지만 홍예교 다리아래 산지천도 흐른다. 거기에 우리의 사랑도 흐른다”. 말 한마디에 나는 그만 울컥 예전에 나로 돌아가 버렸다.

 

건입동에서 30여 년을 산 나는 산짓물에 목욕을 하고 이불빨래를 해서 그 높은 동산을 오르내리던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싶다. 동사무소 조금 위쪽 나무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계절마다 복사꽃, 봉숭아, 상사화, 조팝, 철쭉꽃이 피어나던 곳에 내 친구 화림이가 마당깊은 집에 살았었다. 그날의 햇살들, 그때의 마음 갈피 감정들이 소장님의 홍예교 다리 아래 우리의 사랑도 흐른다 라는 말 한마디에 가슴이 저릿 거렸다. 산짓물에 목욕을 하고 가다 들리면 그 둥근 미소와 함께 내 손에 아폴로라는 작은 사탕을 빨아 먹다가 하나씩 나눠 주곤 했던 내 친구 화림이. 미라보 다리 아래 아니 홍예교 다리 아래 지나간 사랑도, 시간도 돌아오지 않는…그 슬픔들이 또 고성옥 명창님의 혼돌혼돌헌 제주아리랑에 홀려 넘어간다.

 

설문대 할망은 제주섬을 맹글고/ 맹지백필 어서부난 속바지를 못했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낫네/ 아리랑 고개로 날만 냉겨 다오

 

제주아리랑 2절이다. 나머지 구절은 제주신보 동영상코너에서 들어보시길 권한다.

 

강문규소장님은 산지천이 가진 역사적 가치와 복개되기까지의 힘들었던 과정을 설명해 주셨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지천을 되찾았으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써주신 많은 분들의 그 수고와 노고에 감사할 따름이다.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했던 아폴리네르보다도 홍예교 다리 아래 도롱이 입고 낚시하는 어옹漁翁들의 바람결 타 피리 불며 돌아오는 산포조어가 더 흥이 나고 아름답다. 나만 그러한가?

 

글=강영란

음악=고성옥 명창

해설=강문규 한라생태 문화연구소장

시 낭송=김정희

그림=김해곤

음악·음향=이상철

 

※다음 바람난장은 13일 난산리 김순이 시인댁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