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경운기
늙은 경운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19세에 경운기를 처음 샀다. 반짝반짝 빛나는 새 경운기는 제주 시내에서 우리 마을까지 15킬로를 달렸다. 옆을 스쳐 지나가는 멋진 승용차도 안 부러웠고,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답답할 만큼 느린 속도였겠지만, 내가 느끼는 속도는 바다 위를 미끄러지는 보트처럼 빨랐다. 버스 속에서 바라보는 꼬마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여유도 부리며 집에 도착했다.(중략)

오늘도 내 손길을 그리워하던 40세에 접어든 경운기가 덜덜거리며 땅을 판다. 어디가 떨어지면 교체하는 대신, 내 손으로 용접하여 사용하다 보니 덕지덕지 나이를 먹은 만큼 보기에도 흉하다. 다른 이들은 고물로 두 번도 더 처리했을 세월 동안 나와 함께 살아온 경운기.

밭갈이하면서 늙은 경운기가 혹여 탈이 날세라 조심스럽게 다룬다. 어느새 내 나이도 환갑이 목전이다. 도토리 키 재기처럼 누가 나이 많은지 견주어 보다 피식하고 혼자 웃고 있다.

밭갈이를 잠시 멈췄다. 냉각기가 낡아 조금씩 새는 물을 보충하고 경운기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나랑 갈 수 있는 날까지 함께하자 약속한다.

‘경운기 할아범, 우리 힘내서 일 마무리합시다.’ 다시 시동을 걸었다. (양재봉의 〈늙은 경운기〉 중에서)

양 수필가와 나는 임의로운 사이다. 그는 등단 작가로 얼마 전부터 내가 강의를 진행하는 ‘들메동인문학회’에서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해 창작열을 지피고 있다. 한 달 두 번, 읍내에서 신제주 글방까지 오가며 차중에서 주고받는 문학에 관한 담론은 서로 간 퍽 유의미(有意味)하다.

그는 소싯적 불우한 환경에서 세파에 부대끼며 신산한 고생 속에 자랐다. 돈 주고 못 산다는 초년고생으로 더욱 강고(强固)해진 그다. 육지를 전전하다 고향에 돌아와 양돈, 공예품제조, 감귤재배 등 여러 직종을 고루 체험했다. 그중, 감귤 재배는 야심만만해 27세에 1만 평을 일궈 제주 귤 총 생산량의 만분의 일을 점했다 한다.

19세에 사 온 경운기가 엄청난 일을 해줬다. 밭갈이, 짐 운반, 탈곡, 농약 살포…. 덕분에 집안 빚 수천만원을 말끔히 변제했다. ‘늘 함께해 온 경운기가 도와준 결실이었다.’고 수필에서 술회하고 있다.

주변을 추스를 즈음에야 주경야독으로 공부를 시작한 그. 지천명에 환경과 보건학을 비롯해 식품위생과 미생물학에 천착하면서, 서예에도 매달렸다. 환경관련 연구는 중앙에서 대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환경부로부터 환경관련 강사 자격을 취득한 게 그 노역이 얻어낸 성과물이다. 독학으로 각고면려(刻苦勉勵)한 결과였다.

미생물 활용연구와 지원, 환경 분야·서예 강의로 시간에 쫓기면서 그의 생활구조가 바뀌었다. 자연, 농사는 텃밭으로 국한됐다. 과수원을 정리하자 할 일이 없어진 경운기가 급속히 낡아 갔다. 딴 사람 같았으면 고물로 내다버렸을 것인데, 그는 아니었다. ’이곳저곳 삐걱거리며 아픈 소리를 내는 경운기. 부식된 모습으로 허물을 달고 상처를 치료해 달라 손을 벌린다. 가끔 녹슨 철을 털어내고 구멍 난 곳은 용접하여 때웠다.’고 했다. 그에겐 용접 기술도 있다.

‘말 모르는 무정한 것과 동고동락하며 어느덧 나이 60’이라는 그의 푸념이 귓전이다. 경운기가 이제 40세라는 얘기다. 그새 엮어 온 내력에 가슴 뜨끔하다.

그가 쪽파를 감귤 운반용 컨테이너로 한가득 싣고 와 마당에 부려놓고 간다. 주인이 활짝 웃자 ‘늙은 경운기’가 제법 속력을 낸다. 수필 속의 그 40세 경운기다.

양재봉 작가를 만나면 으레 이 경운기가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 사이를 인연(因緣)의 강물로 수런거리며 흐르리라, 간단없이 오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