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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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선거판은 으레 전쟁터에 비유된다.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면 자신이 거꾸러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추태와 비방이 난무하고 이판사판 싸우기 일쑤다. 흥분하고 분노하는 탓에 때론 자제력을 잃고 자신의 이미지를 단박에 망가뜨리기도 한다.

이런 각박한 상황을 반전시킬 수 방법으로 통상 유머를 든다. 서양은 특히 유머를 정치인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꼽는다. 곧 부드러움이 뻣뻣함을 이긴다는 유능제강(柔能制剛)의 묘리다. 독설과 선동에 능한 정치인이 유머로 무장한 지도자를 넘어서긴 힘들다. 실제 웃음의 묘약을 활용해 큰 업적을 남긴 리더가 적지 않다. 그들은 막말을 퍼부으며 달려드는 정적을 유머로 순식간에 무장해제시키곤 했다.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 전 미국 대통령과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 전 영국 총리가 대표적이다.

▲링컨이 상원의원에 출마했을 때다. 상대 후보가 링컨은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고 몰아세웠다.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은 링컨은 “내가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면 왜 이렇게 못생긴 얼굴을 들고 나왔겠냐”고 반문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고 분위기가 이내 반전됐음은 물론이다.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처칠의 유머 역시 멋들어진다. 한 번은 그가 의회에 늦게 출석하자 야당 의원들이 무례한 게으름뱅이라고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그러자 처칠은 “늦어서 죄송하다. 여러분도 저처럼 예쁜 아내와 산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막말에 고성이 오갈 것 같던 의사당에 여야 의원들의 폭소가 흘러넘쳤다.

이런 수준의 정치라면 아무리 심한 정쟁을 벌여도 국민이 짜증을 내는 일은 없을 터다.

▲한국 정치판에는 유머가 거의 없다.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막말과 선동 등 네거티브 공세가 거세다. ‘이놈들아’ ‘도둑놈 새끼들’ ‘온갖 지랄’ ‘완전히 궤멸’ 등 상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독설이 쏟아진다. 그 대상이 나중에 국정을 의논해야 할 상대요, 그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이다. 상식을 벗어난 거친 언사가 남길 후유증이 걱정된다.

정치인의 품격은 말로써 완성된다. 때론 강경하게 그리고 유연하게, 어떨 땐 재치와 유머를 발휘하는 게 필요하다. 한마디 유머로 소통하고 상대방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보다 상책은 없을 것이다. 4일 앞둔 우리 대통령 선거가 마주 달리는 열차처럼 폭발 직전의 형국이다. 언제쯤 풍부한 유머로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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