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失鄕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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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의. 수필가

실향민의 사전적 의미는 고향을 잃고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에는 고향을 빼앗긴 경우도 부연된다. 고향을 잃는 일은 천재지변으로 삶의 근거나 터전의 상실되는 경우가 있고, 전쟁이나 이와 유사한 재난으로 터전의 폐허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또 하나 고향을 빼앗기는 일이다. 삶의 터전이 도시계획 등으로 군사작전지역에 편입되거나 항만 또는 공항건설로 고향을 떠나야 하는 경우다. 고향을 잃거나 빼앗기는 건 매우 불행한 일이다. 이런 현실과 맞닥뜨리는 걸 재앙에 비유하기도 한다. 지난 겨울,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을 지나다가 ‘제2공항 건설 반대 도지사 퇴진’이라는 간판이 세워진 걸 보았다.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는 날이었다. 한 청년이 간판 앞에서 언 손을 불어가며 제2공항 건설 반대와 도지사 퇴진을 외쳤다.

젊은이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눈발에 흩날렸다.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돋우던 젊은이에게, 수고한다는 빈말이라도 한 마디 건넬 걸 하는 착잡함이 지워지지 않았다.

문득 ‘문순태’의 소설 ‘징 소리’의 칠복이와 제2공항 건설 반대를 외치던 젊은이의 모습이 겹쳤다. 징소리는 전라남도 장성에 있는 장성 땜 건설로 실향민이 된 이들의 지난한 삶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이태 전 여행길에 장성호에 잠시 머문 적이 있다. 땜의 건설과 실향민을 묘사한 소설을 읽었던 터라 탁 트이고 드넓은 땜에 눈길을 주고 소설 속 화두에 잠겨 보았다.

이 땜은 3년 여의 예비 타당성 조사를 마치고 1973년 7월에 착공하여 1976년 10월에 준공했다고 한다. 땜의 넓이가 4개 읍, 17개 이(里)에 걸쳐진다고 하니 그 광활함이 짐작되었다. 땜이 아니라 바닷물이 들고나는 만(灣)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장성호가 건설될 때 땅을 많이 보유했던 이들은 보상금을 많이 받았지만 칠복이라는 농투성이 젊은이는 쥐꼬리만 한 보상금을 손에 쥐고 고향을 떠나야 했다. 그때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거의가 가까운 광주(光州)에 터전을 마련하고 살림을 차렸다.

보상금이 많고 적음을 떠나 실향민들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보상금을 적게 받은 칠복이는 막노동 현장을 찾아다녔고, 아내는 남의 식당에서 일을 하며 살림을 꾸렸다. 그렇게 얼마간 세월이 흘렀을 때 예기치 않는 일로 칠복이는 아내와 헤어지게 된다.

그는 여섯 살짜리 딸과 낡은 징 하나를 메고 물에 잠겨버린 고향마을로 돌아와 속절없이 징을 쳐댔다. 한에 서린 울분의 징 소리가 장성호에 울려 퍼졌다. 칠복이보다 앞서 고향마을로 돌아온 이들은 땜 가에서 낚시꾼들이 낚아 올린 고기로 매운탕을 끓여주며 예전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것이 거대한 장성호 건설의 후일담이다.

나는 아직까지 제2공항에 몇 개 마을이 편입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긴 한데 당연히 실향민이라는 말이 나오겠구나, 하는 연민은 지우지 못했다.

설마 그러기야할까마는 제2공항에 편입되는 마을 주민들에게 소설의 주제와 비견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기는 장성호 건설은 1970년대의 일이라 제2공항 건설과는 다르다는 현실적 논리에 무게가 실릴 수도 있다.

다만 소멸 위기의 고향마을에서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울분과 억하심정을 어디에 하소연하면 될지는 숙제로 남는 일이다. 제2공항 건설로 고향을 떠나야 할 이들에게 실향민이라는 명사가 덧씌워지는 것은 설핏 받아드리기 쉽지 않은 대목임을 왜, 모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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