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륜
천륜
  • 제주신보
  • 승인 2017.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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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봉. 환경운동가/수필가

아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새해 들어 인사를 나누지 못한 친구를 만나고 온다던 아이가 생각보다 일찍 들어와 미심쩍었다. 스물일곱 한창 나이에 친구들과 만나면 소주도 한잔 기울이며 밤샘도 할 수 있는 때가 아닌가. 기운마저 없어 보이고 맥이 풀려있었다. 들어보니 사연은 이러했다.

친구를 만났는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6개월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가 나왔다. 그 친구는 아직도 어머니를 잊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었다. 어머니 장례식을 끝내고 흔적들을 불에 태웠다. 모두 다 태웠는데 웃옷 하나를 일부러 남겨 뒀다고 한다. 어머니가 그리울 때 어머니 옷에서라도 그리움을 찾고 싶었다며….

어머니가 생각날 때, 옷이 눈에 보일 때, 어머니 체취를 맡으며 그리움을 달랬다. 그런데 슬프다는 거였다. 어머니 체취가 점점 옅어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는 거다. 그런 친구의 말을 들으며 울컥할 뿐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친구에게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심하게 밀려와 견딜 수 없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효자다. 요즘 세상에 그런 심성을 가진 젊은이가 있으니, 이 세상은 아름답지 않은가. 참 착한 친구를 두었다고 말해 줬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우리 삶이라고는 하지만, 부모님이 나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가야 할 사람이란 생각을 하니 슬프다.”고 말한다. 내 자식도 효자 친구를 두었으니 조금은 닮아 가나 보다.

이별은 슬픈 일이다. 특히 가족이 죽음으로 헤어지는 아픔은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아내도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어선지 들으며 슬며시 눈물을 훔친다.

장모님이 돌아가신 지 5년이 흘렀다. 여전히 우리 집 안방 화장대에는 장모님 사진이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아내의 휴대폰 바탕화면에도 장모님 사진으로 깔려 있다. 그것뿐인가, 새것을 마다하고 물려받은 낡은 재봉틀을 사용하고, 반닫이와 당신의 손때 묻은 그릇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햇살 좋은 날이면 어머니 산소를 떠올리고, 비 내리는 날이면 어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추억을 떠올린다.

지인들은 그런 아내에게 잊을 건 잊는 게 좋다고 한다. 만나면 반드시 이별한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뜻을 생각하며 이승의 연을 놓아드려야 좋은 곳에서 행복하실 거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부모님이나 배우자가 먼저 떠났을 때 모두 그렇게 말을 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도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늘 다른 뜻을 전하고 만다. 저 세상이 있는지, 영혼의 세계가 있는지 없는지 잘은 모른다. 막연하지만 영혼의 세상이 있다면 얼마나 외롭겠는가, 상주였던 지인에게 건강한 생각으로 많이 떠올려 드리고 그리워해 드리라고 말한다. 자식 된 도리로, 배우자 또는 친구가 오래도록 그리워해 주지 않는다면 그 영혼이 얼마나 슬플까.

아내는 아직도 어머니가 간간이 떠오른다 하고 꿈에서 조우하는 날이 많다고 한다. 당연한 것이다. 일부러 잊으려고 해도 잊히지 않는 게 기억이다. 심신이 나약하여 잊지 못해 병이 날 정도면 치료를 받아야 할 문제지 잊으라고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친분을 가진 지인의 인연도 세상을 등지면 자주 떠오르건만, 부모와 자식, 배우자는 하늘이 맺어 준 인연이다. 천륜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