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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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희로애락의 감정이나 생각은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그렇다고 육체와 무관한 것도 아니다. 몸이 건강할 때는 맛있던 요리도 아프거나 피곤하면 그 맛이 형편없게 느껴진다. 맛뿐 아니라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감정이 건강과 맞물려 드러난다.

이 때문일까. 건강과 젊음을 지키려는 사람들로 동네방네가 들썩인다. 유한한 인생에 찰나의 젊음이지만 그걸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이다. 운동에 매달리고, 건강식을 챙기고, 피부 손질에 정성이다. 거기다 미용 시술이나 성형도 마다하지 않는다. 가는 세월에 맞서려는 힘겨운 도전 같아 측은한 생각도 든다.

살다 보면 별별 일들을 마주하게 된다. 좋은 일일 때는 누가 거들지 않아도 좋기만 한데 궂은 일일 때는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다. 누군가 곁에서 바라봐주기만 해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될 듯싶은데, 그 누가 없다면 삶은 공허해진다. 노년의 삶은 부부가 함께해야 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오월은 가정의 달로 부부의 날도 껴있다. 결혼하는 커플 수만큼 이혼하는 부부들이 늘어나는 세태에 부부 금슬을 성찰해보는 계기로 삼아볼 일이다. 오순도순 다독이며 사는 황혼 부부가 마냥 부러운 시대다.

부부로 해로한다는 것은 서로의 사랑을 완성하며 생의 끝자락까지 완주함이니 더없는 축복이며 영광이다. 누구나 결혼할 때는 그런 해로와 사랑의 완성을 다짐하지만 살다 보면 하찮은 감정 때문에 돌아서기도 하는 게 부부 관계다. 맞선이나 연애가 운명적인 부부의 연이라면 부부 사이의 금슬은 스스로 땜질하며 엮어가는 기예라고나 할까. 오묘한 상대의 마음까지 헤아리며 죽는 날까지 살얼음 위를 걷는 기교로 살아야 하는 게 부부의 삶이다.

심리학 교수인 존 가트만(John Gottman)의 ‘관계치료법’에 보면 부부 갈등이나 이혼의 근본 원인은 성격 차이가 아니라 관계나 대화의 방식이다. 학력이나 재산, 지위나 명예 같은 외부적인 요소들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갈등들이다. 갈등의 해법도 서로를 위한 작고 순수한 일들을 조금씩 자주 하고, 상대의 기본 성향이나 성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상을 공감하며 같은 방향을 향해가는 삶이 부부 금슬의 핵심이란 뜻이다. 쉬운 듯 어려운 일이다. 저도 모르는 여러 갈래의 속마음들은 상황에 따라 서로 엇갈린 방향을 좇으며 갈등을 빚어낸다. 갈등은 미움을 낳고, 그게 쌓이면 파국에 이른다. 행복한 부부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별것 아닌 것 같은데도 어느 한 쪽에서는 이혼으로 갈라서는 부부가 생겨나는 이유다. 인간의 마음이 빚는 사랑과 미움의 조화(造化)다.

그렇다고 이혼이 극복하지 못할 삶의 절망만은 아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인생을 새롭게 반전시키는 기회일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인연 따라 누군가 내 삶 속으로 드는 게 부부의 연이었다면 그 연이 다하여 떨어져 나가는 게 이혼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꽃이 피었다 지는 것처럼. 그게 가능하다면 혼자의 삶은 순수한 고독의 향유이며 자유로운 삶일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 졸혼(卒婚)이란 용어가 심심찮게 나돈다. 남편과 아내로서의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각자의 여생을 자유롭게 살며 즐기자는 새로운 풍속도다. 부부로서의 삶이 서로 간섭이 되고, 장애가 된다면 이혼보다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부부가 해로하며 완성해가는 사랑의 삶만이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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