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신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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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편집국장
“앗! 저기 온다.”, “귀하신 몸 행차하시나이까?” “어흠”, “저 어른이 누구신가요?” “쉬”, “경무대서 똥을 치는 분이요.” 1958년 1월 23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4단 만화 ‘고바우 영감’이다. 당시 간신배들로 북적거리는 경무대(현재의 청와대)를 빗대어 똥지게를 지는 사람도 권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신랄하게 풍자했다.

이승만 정권 시절에 벌어진 ‘가짜 이강석 사건’을 소재로 한 이 만화는 ‘귀하신 몸’이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서민들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작가 김성환 화백은 권력의 비위를 건드려 곤욕을 치렀다. 방귀를 ‘뿡!’하고 뀌자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아부하던 시절의 이야기지만, 지금도 세월에 녹슬지 않고 종종 회자하고 있다.

▲권력자 주변에는 부나방들이 집요하게 서성거리며 느슨한 틈을 노린다. 조그만 빈틈이라도 생기면 아부와 찬양으로 무장해 어렵지 않게 한자리를 차지한 후 ‘귀하신 몸’행세를 한다.

이러는 사이 정작 권력자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 모르다가 권좌에서 쫓겨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나라의 몇몇 대통령의 말로를 봐도 알 수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하야 시에는 ‘국민이 원한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자 허정 외무장관과 김정렬 국방장관이 ‘즉각 하야’를 적극적으로 압박했다고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전에 누구 하나 간청을 했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입에 발린 소리만 하는 충성분자들에 의해 돌아가는 조직에서 리더는 허수아비나 다름없다. 이런 조직에선 똥장군도 리더가 될 수 있다. “막대기만 꼽아도 당선된다”라는 말도 이래서 나온다.

지도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이를 일찍이 간파하고 설파한 이가 중국 춘추전국시대 한비자다. 지독한 말더듬이에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 전에 만난 이도 그였다. 유비가 임종에 이르러 아들에게 꼭 읽으라고 당부한 책 중 하나도 ‘한비자’다. 그는 “다른 사람이 당신을 위해 충성을 다 바칠 것을 기대하지 마라”라고 했다. 뛰어난 군주는 부하의 충성에 의지해서 안 되고, 전혀 충성스럽지 않은 이들을 데리고 일을 성사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 핵심 참모들이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있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자기 할 일을 다 했다며 출국했다.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도 “패권이니 친문ㆍ친노 프레임이니 3철(이호철ㆍ양정철ㆍ전해철)이니 하는 낡은 언어도 거둬달라”면서 ‘잊힐 권리’를 허락해 달라고 했다. 이를 두고 참신하고 아름답다는 평들이 쏟아지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영욕은 이른바 귀하신 몸들의 처신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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