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종군
백의종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충무공에게 22년 무관 생활에서 가장 어려웠던 때가 7년 전쟁 중 정유재란 시기(1597~1598)였다. 전쟁 영웅이던 그가 역적으로 몰려 죽임 직전까지 갔었다. 아들을 일본군에게 잃었으며, 백의종군 도중 어머님이 돌아가시는 등 일생의 가장 어려웠던 시절이 겹친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나라를 지켰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백의종군이었다. 삭탈관직 되고 난 뒤, 도원수 권율 진영에서였다.

백의종군(白衣從軍)이란 벼슬 없이 군대를 따른다는 말이다. 백의 곧 흰옷은 벼슬하지 않는 평민을 뜻하는 포의(布衣)로, 가장 낮은 병졸의 직분으로 전장에 나감을 뜻한다. 참된 군인은 아무리 무고를 당하고 고통스럽더라도 나라를 지키는 군문을 벗어날 수 없다는 엄중한 뜻을 지닌다.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냈던 충무공이, 자신을 일개 군졸로 전란에 몸을 던지게 한 것은 오로지 구국의 일념이었다. 그는 말년에 궤멸 상태에서 남은 12척의 폐선으로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조선의 수호신이다.

충무공의 백의종군은 얼마나 절박한 선택이었는지를 오늘에 되새길 일이다. 허투루 써선 절대 안 되는 말이다. 입에 함부로 갖다 붙일 말이 따로 있다. 어떤 조직의 요직에 있던 자가 그 직에서 물러날 때, 으레 백의종군하겠다고 한다. 한심스러운 어법이고 엉뚱한 발상이다. 어떻게 그 말을 선뜻 입에 올리는가.

한데 오랜만에 ‘백의종군하는 방향으로 거취 문제를 매듭짓다’란 말에 눈귀가 번쩍 띈다. 백의종군이 모처럼 제자리를 찾았잖은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알려진 전 청와대 Y 비서관이 새로 출범한 정부에서 어떤 공직도 맡지 않고 백의종군하겠다고 선언했다. 예전에 없던 목소리라 신선했다. 티 없는 소리엔 벌렁거리며 가슴이 떨리는 법이다. 그의 마음이 그랬고, 표정·음색이 그러했다.

더군다나 대선 아닌가. 선거 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논공행상의 뒷얘기가 씁쓸할 것인데, Y의 경우는 그런 게 전혀 아니었다.

‘최측근이 자리를 맡게 되면 지위 고하에 상관없이 실세 논란을 야기한다. 국정이 시스템으로 굴러가야 함에도 장애가 된다는 뜻을 대통령에게 피력해 왔다’고 한다. 새 정부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버리겠다는 그의 충정을 대통령이 고심 끝에 받아들였다고 밝힌 것이다.

선대위 비서실 부실장을 지낸 그다. “정권교체에 성공하면 나의 소임은 거기까지다. 어떤 자리도 맡지 않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누차 밝혔고, 지금도 그런 입장에 변함이 없다.” 그의 의지는 강고했다.

대통령이 청와대로 그를 불러 만찬을 하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는 얘기에 이어, 그가 지인들에게 띄운 문자에 가슴 아리다.

“그분과의 눈물 나는 지난 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이제 퇴장한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다. 새 정부가 원활히 출범할 수 있는 틀이 짜일 때까지만 소임을 다하면 제발 면탈시켜 달라는 청을 처음부터 드렸다.” 이어지는 말, “항해는 끝났다. 비워야 채워지고, 곁을 내야 새 사람이 오는 세상 이치에 순응하고자 한다. 정권교체를 갈구했지 권력을 탐하지 않았고, 좋은 사람을 찾아 헤맸지 자리를 탐내지 않았다. 저의 퇴장을 끝으로 패권이니 친문·친노 프레임이니 하는 낡은 언어도 지워지기 바란다.”

대통령의 심복지인(心腹之人)이다. 마음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 그가 대통령을 만들고 대통령 곁을 떠났다.

그는 조만간 뉴질랜드로 떠나 장기간 체류할 것이라 한다. 흡사 소설 속의 한 편을 읽는 것 같다. 백의종군을 입에 올릴 만하지 않은가. 말에도 격이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