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사람의 여린 발목이 그리워질 때면 저 꽃이 온다네

그가 걸어간 천년의 건널목

절벽을 움켜쥔 꽃들이 흰 풍등을 올리면

마음이 먼저 따라가는 저물녘

 

피지마라! 꽃 따위로는

그 말 들어 주지 못한 후회로

백화등은 솜빡 피고

피어서 그대를 닫을 수 없어져 버리고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만 몸을 기울이는 허공

 

사무친 것들이 있어서

열린 꽃 문으로 향기 몇 동이

퍼붓는 것이니

 

사랑이여

희게 오는 사랑이여

그만 건너오시라

봄밤은 짧으니

 

-강영란의 ‘백화등은 솜빡 피고’ 일부

   
▲ 김해곤 作 바람끝에서 피어난 꽃.

 

이번 ‘바람난장’은 순전히 친구 따라 강남 가듯 그렇게 이뤄졌다.

 

구좌읍 세화에 거주하는 김수남씨(75세, 농업회사법인 삼다인 대표) 집에 마삭줄 꽃이 잘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라식물사랑회(회장 김창부) 회원들과 제주자연예술인총연합회(회장 홍인부) 임원들이 찾아가는 기회에 난장도 함께 펼쳐진 것이다.

 

자연예술과 문화예술의 만남, 그 자체가 소통이요, 아름다움이었다.

 

제주의 초여름은 ‘백화등’을 올리는 계절이다. 대한분재협회한라지부 회원이기도 한 김수남씨의 정원은 바람이 불 때마다 일찍 찾아온 더위를 식혀 주려는 듯 ‘아기 선풍기 날개’ 같은 꽃잎들이 도는 듯했다.

 

   
▲ 김장선씨의 시 낭송 모습.

우리는 내친김에 분재가 예술이라는 김수남씨의 양돈장까지 찾아갔다. 현재 돼지 사육두수가 2만 2000여 마리로 제주지역 최대 규모라 하니 악취가 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농장은 꽃향기와 나무로 뒤덮여 양돈장이라는 말이 무색했다.

 

김씨는 “다랑쉬오름 인근 부지에 분재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면서 “마삭줄 꽃을 테마로 다른 분재공원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싶다”고 밝혔다.

 

우리 일행을 안내한 김창부 회장은 “마삭줄은 ‘한국산 재스민’으로서, 제주에서는 흔한 것이지만, 가장 귀한 자산”이라며, 전국의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제주의 마삭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시 낭송가 손희정씨의 시 낭송은 이 시의 맛과 멋을 더욱 그윽하게 했다. 백화등은 ‘피어서 그대를 닫을 수 없어져 버리고/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만 몸을 기울이는 허공’이란 대목에 이르면 그저 마음이 먹먹해진다. 낭송과 시와 백화등이 어우러져 5월의 허공에 그리움이 넘실넘실 향기로 퍼져나간다.

 

바람난장에 오카리나는 주요 멤버다. 제주국제오카리나협회 이정순 회장과 이정아, 이새미 회원의 3중주로 ‘철새는 날아가고’와 ‘딱따구리’가 경쾌하게 연주되었고, ‘비바람이 치는 바다’로 시작되는 뉴질랜드 민요 <연가>를 40여 명의 참석자 모두가 합창을 했다. 봄날의 끄트머리가 초여름으로 슬몃 발걸음을 옮기는데 새소리 또랑또랑 들린다.

 

   
▲ 손희정씨의 시 낭송 모습.

사전적 풀이로 예술이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작품을 제작하는 모든 인간 활동과 그 산물’이다. 당연히 수석이나 분재, 야생화 가꾸기도 자연예술의 범주에 속한다. 홍인부 회장은 “올해 2월 1만 2000여 제주자연예술인들의 결집체로서 제주자연예총이 출범했다”라며 “문화예술 단체와 더불어 제주의 미와 가치를 견인하는데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늘은 문득 어느 먼 그리움에게 백화등 ‘향기 몇 동이’를 선사하고 싶다.

 

   
▲ 바람난장에서 제주국제오카리나협회 이정순 회장과 이정아, 이새미 회원이 오카리나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글=오승철

그림=김해곤

시 낭송=손희정, 김장선

오카리나 연주=이정순, 이정아, 이새미

사진=장영춘

해설=김창부

음악 감독=이상철

 

※다음 바람 난장은 27일 오전 11시 지귀도에서 펼쳐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