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승생오름 정상 부근에서 본 한라산 전경.

꼬마 한라산이라고 불리는 어승생. 어승생악 또는 어승생오름이라고도 한다.


‘어승생’이란 이름은 어승마(御乘馬)에서 유래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 중기 때 이원진이 쓴 ‘탐라지(耽羅志)’에는 ‘이 오름 아래에서 임금이 타는 말이 나왔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는 기록이 있다.


보통 산 이름에 ‘악’자가 들어가면 정말 힘겨워서 ‘악’소리가 날 만큼 험준하다고 흔히 알려졌지만, 어승생악은 한라산 등반로 가운데서도 가장 완만한 산행길로 꼽힌다.


자칫 한라산의 능선으로 착각하기 쉬우나 어승생은 표고 1169m, 비고 350m로 한라산 보다 높지 않은데다 분화구를 품고 있어 꼬마 한라산이라고 한다.


오름의 맥은 제주시 노형동과 연동, 오라동 등 3개 동으로 뻗쳐 있으며, 남서쪽에는 외도천 상류와 동쪽에는 도근천 상류를 끼고 있다.


어승생오름의 입구는 한라산 북서쪽 자락 어리목광장을 통해 갈 수 있다. 어리목광장의 해발고도가 대략 970m인 점을 고려하면 등산객들이 실제 느끼는 높이는 어느 정도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어느 코스로 오르나 하루낮이 꼬박 걸리는 한라산 백록담 정상 또는 사라오름(1325m), 기본 4~5시간을 잡아야 하는 영실~윗세오름~어리목 코스 등을 오를 엄두가 나지 않거나 시간이 빠듯할 때, 가볍게 트레킹을 하고 싶을 때 어승생만 한 곳도 없다.


탐방로는 초입에서부터 나무계단으로 잘 정비됐다. 어린 자녀와 같이 가기 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전체적으로 경사가 완만한 편이지만 정상까지 30분가량 소요된다.


산행 중에는 커다란 나무 밑에 넓게 퍼져 자라고 있는 조릿대와 꽝꽝나무, 주목 등 싱그러운 자연림이 빽빽이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람에 나무끼리 스쳐 삐걱거리는 소리와 새들의 노랫소리는 덤이다.


이렇게 오르다 보면 어느새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허벅지가 제아무리 돌덩이처럼 단단하다 할지라도 터질 듯 아파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 이럴 때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조금 쉬어가도 좋다. 선선한 산바람이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식혀줄 것이며, 맑은 공기와 자연의 싱그러움은 지친 몸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


정상의 전망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황홀하다. 한라산 능선과 도두봉, 민오름, 사라봉, 원당봉, 별도봉이 한눈에 펼쳐진다. 저 멀리 제주시지역 전경도 보인다. 아기자기한 건물은 꼭 레고 장난감을 보는 듯하다. 코발트빛의 제주 앞바다까지 눈에 들어온다. 공항에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모습도 이곳에선 장관이다. 구름 없이 맑은 날에는 북쪽으로 바다 멀리 추자도와 비양도, 성산일출봉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든지 시선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360도 파노라마 뷰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정상에는 제주시 풍경을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망원경도 설치돼 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이 있다. 열은 열로써 다스린다는 뜻이다.


때 이른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지만, 잠시 인공적인 에어컨과 이별하고 밖으로 나와 오름을 오르며 자연과 동화되는 기분을 느껴보는 것을 어떨까.

 

   
 

*일제 진지동굴


-어승생 정상에는 일제강점기 말기에 일본군이 미군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동굴 진지가 있다.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307호)로 지정된 이 일본군 전쟁시설은 1945년 일본군이 제주도를 최후의 저항기지로 삼아 동굴 진지와 갱도, 토치카를 설치, 침략의 역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동굴 진지는 제주시내와 애월, 한림 등 서부지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일제가 도민들을 강제로 동원, 한 번에 5~6명이 설 수 있는 구조로 견고하게 구축됐으며,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훼손한 일본의 횡포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흔적이기에 잘 보존되어야 할 것이다.


진유한 기자 jyh@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