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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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호/수필가

완연한 봄기운에 잠시 심취했었나 보다. 수십 년 간 틈틈이 손길이 닿아 낡을 대로 낡은 로보(Lobo)의 LP 음반 한 장을 꺼내 들고 턴테이블을 연다. 홈을 따라 바늘이 지나갈 때마다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도리어 정겹게 들린다. 잡음 하나 없이 깨끗이 들리는 디지털 음악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시대를 역행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친근한 소리일 뿐이다. 감미로운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리는 사이 닫혀 있던 회상의 문이 열린다.

 

통기타와 청바지로 상징되던 1970∼80년대. 연이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공적 마무리를 토대로 궁핍의 늪에서 벗어나 경제 부흥의 길을 질주하던 시기다. 물론 오늘날의 윤택한 삶과는 비할 바 아니지만, 전후(戰後)의 초라한 모습에서 탈피하여 제법 생기가 돌던 때이다. 그렇다고 하여 마냥 살기 좋은 시절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정치적으로는 아직도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급속한 경제 성장에 비례하여 향상된 시민의식은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해 쉬지 않고 분투하였고, 어떻게든 권력을 유지하려는 정권은 고삐를 더욱 옥죄어 이들 사이의 괴리 현상은 필연적으로 사회 불안을 야기하였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필자와 같은 베이비부머(Baby Boomer)들은 방황하는 청춘일 수밖에 없었다.

 

그네들에게 청춘의 낭만은 허울 좋은 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그저 힘없는 자의 설움을 맨주먹으로 울부짖을 뿐이었다. 서구화의 유입과 말 없는 항변의 여파로 인해 젊은이들 사이에선 나팔바지, 미니스커트, 장발이 유행하였다. 급기야 경찰관들이 자를 가지고 다니면서 여성들의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는가 하면, 남성들의 장발은 발견 즉시 무료 삭발을 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행태가 이어지기에 이르렀다. 당대의 암울한 일면이었다.

 

무릇 21세기를 ‘대중의 시대’라 일컫는다. 바야흐로 백세 인생을 사는 센티네리안(centenarian)들의 세상이다. 위대한 대중의 힘은 촛불의 위력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발원(發源)에는 쓰라린 한 시대를 묵묵히 슬기롭게 대처해 온 베이비부머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다고 자부한다.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이 귀에 익은 세대, 진정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던 시대를 살아 온 사람들. 이제는 서서히 고령화 사회의 일원이 되어 가고 있지만, 그들의 뇌리엔 파노라마처럼 스치는 아린 역사와 함께 잊히지 않을 추억들이 쌓여 있다. 필자는 이를 ‘7080’이라 쓰고 ‘향수(鄕愁)’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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