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절리(柱狀節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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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금란굴 돌아들어 총석정에 올라가니/ 백옥루 남은 기둥 다만 넷이 서 있구나/ 공수가 만든 작품인가/ 조화를 부리는 도끼로 다듬었는가/ 구태여, 육면(六面)으로 된 돌기둥은 무엇을 본떴던고?’ (정철의 관동별곡 중)

동해안의 총석정에서 백옥루 장관을 영탄한 대목이다. 데생한 듯 돌기둥의 묘사가 출중하다.

옛날 송강이 제주에 왔더라면, 서귀포 ‘주상절리’를 지나치지 않았을 테다. 섬을 돌다 노독도 풀 겸 높이 올라앉아 막걸리 한 사발에 3·4조를 녹여 가사(歌辭) 한 수 읊었으리라. 주상절리 대신, 운치 있게 옛 이름 ‘지삿개바위’라 했을지 모른다.

주상절리는 중문 해안 2km에 모도록이 펼쳐진, 절벽이 틈을 내며 갈라진 바위 풍광이다. 크고 작고 높고 낮은 돌기둥들이 대패로 깎아 세운 듯 단애(斷崖)로 발달했다. 분화구에서 흘러내린 용암이 급랭으로 이뤄졌다는데, 용암이 수직으로 쪼개져 ‘기둥 모양 절리’를 빚었으니, 그 신기함이라니. 다림질한 듯 바위 틈새기에 일그러짐이라곤 없다. 보고 또 보거니와 하도 절묘해 나오느니 감탄, 감탄이다.

또깡또깡 모 난 게 아이들이 미술 시간에 쓰는 파스텔이거나. 영락없이 시골집 모롱이에 켜켜이 쌓아 놓은 굵직한 장작더미다.

용암의 선물이라 하나, 볼수록 기기묘묘하다. 5, 6각형 기둥 모양이 그렇고, 펑퍼짐하게 누운 채 벌집처럼 다닥다닥한 암반 연속무늬도 그렇다. 가령, 눈 못 뜰 지경으로 파도가 물보라로 흩날리지 않을진대, 저 커다란 벌집들 속으로 벌이 붕붕거리며 떼 지어 날아들 것만 같다.

자연이 신비롭기로서니 차마 저러한가. 천공(天工)이라 하지만, 화산 폭발로 용암이 이글거리는 혼돈 속에 어찌 새긴 조각품인가. 같아 보이되 똑같지 않고, 달라 보이되 영락없는 한 피붙이라 신묘(神妙)의 극치다. 정교 섬세한가 하면 묵직이 굵고, 한데 쏠려 가지런한가 하면 이리저리 흩어 있다. 흩어졌으되 산만하지 않고 한 틀 안에 몰려 있어 정연하다. 파도가 너울을 불러도 끄떡없다고 여유라도 부림인가. 돌기둥 몇 개, 뚝 떨어져 나간 이탈마저 눈길을 붙든다. 떨어졌든 흩어 있든 사이는 뜨되 존재로 엄연하니, 어느 하나도 무질서 속의 질서다.

타고난 어떤 기예의 손이 수천만 번 쪼고 깎고 다듬은들 이에 닿으랴 감탄하는 순간, 작아지며 바위 앞에 한낱 미물로 서 있는 게 사람이다. 단정한 듯 우쭐대고 당돌한 듯 겸손하여라. 사철 소리치며 달려드는 파도에 씻고 또 씻어 빛나는 새까만 민낯이 어제 본 듯 다정하구나.

강호에 은둔하던 어느 선비의 눈엔 안 띄었던가. 갈맷빛 바닷가 탁 트인 자락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음풍농월했을 법한데, 유래담 하나 없는 게 이상도 하다.

굽어보니, 유람선 두 척이 해안 절경에 빨려들어 멈춘 듯 여유롭다. 쾌속 보트가 붕 떠 물살을 가르는 기척에 바위들 우줄우줄 춤이라도 추겠다.

먼빛으로 오는 두 섬이 우애롭다. 국토 최남단 마라도가 얄브스름히 가느다랗게 떠 가물거리고, 오른쪽으로 가파도가 길게 다리 죽 벋고 누웠다. 서너 걸음에 건널 듯 지척이다. 가파도에서 손만 벋으면 닿을 거리에 산방산이 큰 머리통을 내놓아 한창 위의(威儀)를 떨치는 중이다. 저것들, 이웃 지었으니 호루라기 한 번 불면 단숨에 달려 나오겠다.

주상절리에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굽이치는 좁은 계단을 비집고 지나려니 발을 떼기가 힘들다. 경물에 눈을 빼앗겼음인지 다들 흐뭇한 표정이다.

해안 일대가 잘 그려 세운 거대한 병풍 같다. 돌문화공원에서 보듯, 제주는 돌이다. 돌이 제주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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