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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녀/수필가

사방이 온통 연둣빛이다. 일 년 만에 찾아온 수많은 꽃들과 조우하던 설렘이 아직 남았는데 그새 아기 손톱만 하던 잎들이 쑥쑥 자랐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오는 자연의 섭리가 무뎌지는 감각을 깨운다.


새들도 날아들며 오는 계절을 맞이한다. 까치도, 비둘기도, 이름 모를 새들도 오가며 잠시 들른다. 그리고 이때 보았다. 엄지만한 새들 서넛이 울타리에 와 있는 것을. 순간 긴 겨울, 먼 길을 돌아 제집을 찾아왔나 하는 직감에 가슴이 철렁하였다.

 

지난 늦가을이었다. 마당에 있는 은행나무가 잎을 떨구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빈 가지만 남겼다. 하지만 노란 잎들은 한참동안 나무 아래 머물며 연을 이어가기에 늘 아쉬움이 덜어진다. 서두르지 않고 겨울을 준비한다.


세찬 바람이 불던 어느 날, 텅 빈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휘둘리는 게 있었다. 눈여겨보니 새의 빈 둥지였다. 그것도 아주 작은. 해마다 새들이 찾아와 보금자리를 만들지만 이렇게 작은 집은 처음 본다. 계속 지켜보았다. 센 바람에 금세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듯 조마조마하였다.


밤사이에 강풍이 멎었다. 날이 새자 마당에 나가 나무를 올려다보니 둥지가 없어진 게 아닌가. 찬찬히 둘러보니 다행히 울타리 안에 떨어져 있어 얼른 줍고 들어왔다. 주먹보다도 작은 게 매우 작은 새들을 키운 집이었음이 분명하다. 대체 어디서 배웠는지 실보다도 가는 풀줄기로 안과 겉을 다르게 배색하며 촘촘히 엮은, 게다가 고리까지 만들어 나무에 건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귀한 보물이라 여겼다.
 
지퍼백을 아이들 수에 맞게 준비하였다. 지난 시간에 간식을 하나에다 챙겨 넣고 갔더니 서로 갖겠다고 가위?바위?보를 하던 게 마음에 걸려서다. 여느 가정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비닐 봉투 하나가 이 곳 아이들에겐 요긴하다는 걸 그제서 알았다. 어쩌면 늘 채워지지 않는 허한 마음의 표출인지 모른다. 미안했다.


  
오래 전 잊히지 않는 기억이 하나 있다. 아마 초등학교 사학년 즈음이었을 어느 소풍날이다. 반 친구들이 잔디밭에 빙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데 가까이 있는 친구 하나가 유독 돌아앉아 있는 게 아닌가. 얼핏 눈에 들어온 건 도시락 뚜껑을 반쯤 닫은 채 숨겨 먹던 거무스레한 좁쌀 밥이었다. 늘 말이 없고 혼자 놀던 보육원 아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왠지 미안한 마음에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난 아빠가 있어요!”


목소리에 큰 힘이 실렸다. 비록 헤어져 있어도 연락하는 아빠가 있다는 존재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아이다.


“저, 어제 엄청 울었어요.”


어린이날 고모를 만나러 가는 친구가 부러워서 울었다는, 이 아이들이 사는 곳. 우연한 인연으로 만난다.


언젠가 밥을 사준다고 하자 아이들이 환호했다. 하지만 밥을 먹는 것 보다 외출하는 게 더 좋아서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부모와의 끈을 놓치면서 가슴에 대못을 안고 사는 아이들. 너무 이른 나이에 구심점을 잃고 미로를 걷는 이 아이들이 향할 곳은 과연 어디일까.


무당벌레는 꼭대기에 오른 후에 난다고 한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사막을 넘는 일. 때론 이겨내야 하는 고난도 따르지만 가노라면 푸른 초원도, 오아시스도 만날 터. 언젠가는 가족과 해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연둣빛 잎들로 은행나무가 풍요로워졌다. 사다리를 찾았다. 진열장에 두었던 둥지를 들고 나가 나뭇가지에 걸어주니 비로소 생명을 키운 안식처가 제자리를 찾았다. 부끄러웠다. 누구의 허락도 없이 감히 소유하려 들다니…. 


다시 열리는 계절이다. 이 봄에 가두었던 마음과 온전히 화해하고 싶어 어딘가에서 들려올 메시지에 귀를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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