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의 추억
금연의 추억
  • 제주신보
  • 승인 2017.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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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의. 수필가

삼십 년 연연하던 담배를 끊었다. 쉽지 않았다. 전에도 몇 번 금연을 시도했으나 작심삼일이 되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남들은 주저 없이 한마디씩 했다.

금연이 그렇게 쉬우면 아무나 했을 거라는 둥, 반응이 각각이었다. 그 낯 뜨거운 소릴 들으면서 담배를 피워야 했던 거부하지 못할 이유가 꼭 있었다. 친구가 상을 당했다던지, 계획했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속을 썩인다던지.

한 번 금연 의지가 무너지고 나면 끽연양이 늘어갔다. 그걸 알면서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다시는 어설픈 금연계획 같은 건 세우지 말아야지 하는 자포자기의 늪을 헤맨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가도 어떤 계기에 맞닥뜨리면 금연계획을 다시 세웠다. 하지만 내 금연계획은 늘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새해 첫날에 세웠던 계획이 무너지면 생일날로 봄에서 여름으로, 허망하기 짝이 없는 금연계획이 집요하게 나를 속박했다.

금연 의지가 갈피를 못 잡고 헤맬 때마다 아내와 아이들 대하기도 민망했고 심한 자괴감에 고개가 숙여지기도 했다. 냉소와 질시의 시선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며 피워온 끽연의 역사는 내 인생의 황금기를 지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인생의 황금기를 담배에 잠식당한 비애감에 맥이 탁 풀릴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것은 악연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담배를 피우는 게 아니라 담배가 나를 지배하는 역설이 되고 말았다.

이십대 후반에 시작한 내 흡연의 역사는 삼십대를 거쳐 사십대로 또 오십대까지, 누구의 협조나 후원 없이도 그 알량한 맥을 유지했다. 내가 왜, 그토록 담배에 천착하게 되었는지는 그 동기가 아슴푸레하다.

남들은 끽연의 동기를 말할 양이면 군대 생활을 끼워 넣는 게 다반사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나는 군대 생활 삼 년 동안에 담배를 배우지 못했다. 훈련소에서 신병훈련을 받을 때, 화랑 담배가 삼일에 한 갑씩 나왔는데 나는 그 담배를 옆자리의 골초 훈련병에게 거저 주었다.

그가 얼마나 고마워하던지, 그렇게 담배로 맺어진 인연은 우리가 훈련을 마치고 헤어질 때, 코끝을 찡하게 했다. 삭막한 병영에서 담배로 아우러진 애틋한 추억이다.

마지막으로 금연계획을 세우던 날 나는 한 보루의 담배를 샀다. 이 담배가 내 손으로 사는 마지막이라는 결기와 의미심장함이 담겨있었다. 매일 낱 갑으로 사 피우던 담배인데 보루로 사는 감회가 야릇했다.

담뱃값으로 내미는 두 장의 만원 지폐에서 세종대왕 용안이 조소하는 것만 같았다. 한 보루의 담배를 다 피우는 순간을 담배와 영원히 결별하는 단초로 삼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의 발로였기에 이번의 금연계획은 예전 같지 않았다.

나는 한 보루의 담배를 매우 아껴 피웠다. 이 담배를 다 피우고 나면 다시는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독한 마음으로 한 개비의 담배를 피울 때마다 필터에 불이 붙고 입술이 뜨거워질 때까지 알뜰하게 피웠다.

비장한 각오로 눈물겹도록 아껴 피웠지만 한 보루의 담배는 보름을 넘기지 못했다. 몹시 불안했다. 딱 한 번만 금연계획을 다시 수정할까 하는 유혹에 사로잡히기도 했고, 밤중에 휴지통을 뒤지는 주접을 떨기도 했다.

마지막 한 개비를 다 피우고 났을 때의 안절부절 못했던 기억은 지금도 실소를 자아낸다. 금연계획의 성패여부는 오직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누구의 공조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금연 열여덟 해를 막 넘겼다. 이제 담배와 결별한 아릿한 추억의 낙수(落穗)를 줍는 여유를 만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