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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철 제주대학교 화학·코스메틱스학과 교수

규소(Si, silicon)는 지각에서 두 번째로 풍부한 원소이다. 그렇지만 생물학적으로는 그 역할이 제한되어 있다. 그것은 규소의 일반적인 형태인 이산화규소(실리카) 혹은 규소산이 물에 잘 용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용해도가 낮지만 매년 엄청난 양의 규소산 등이 바다로 유입된다. 이 덕분에 규조류와 방산충류 같은 해양 생물체들이 실리카 수화물로 외골격을 만들 수 있다.

 

식물들은 잎이나 줄기를 뻣뻣하게 만들기 위해 실리카를 이용한다. 어떤 식물에서는 방어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칼슘처럼 규소도 동·식물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규소는 다른 미네랄과 마찬가지로 식품으로 섭취해도 체내에 잘 흡수되지 않는다. 규소의 흡수율은 식품의 종류나 가공법에 따라 크게 변한다. 규소는 바나나, 곡물의 껍질, 전립분으로 만든 시리얼 등에 함유되어 있으며, 대맥을 껍질째 사용해 제조한 맥주의 경우 높은 비율로 흡수된다. 물론 사람들은 물과 음료수로부터 규소 성분을 충당할 수도 있다.

 

이처럼 규소도 동·식물에 필요한 성분이며, 이와 관련하여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쥐와 병아리를 상대로 ‘규소가 없는 음식을 먹인 결과 발육 저해가 일어났다’는 연구가 보고된 바도 있다.

 

어린 연어에 대한 연구에서 규소가 방어적 역할을 하는 증거도 발표된 바가 있다. 알루미늄이 들어있는 물속에서 연어는 48시간 정도 이내에 죽는다. 그러나, 알루미늄 이온과 규소산을 첨가한 물속에서 연어는 잘 자란다. 실제로 음식물에 함유된 규소는 필수요소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규소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폐에 흡수되는 실리카는 독성이 강하다. 규산염 이온(silicate ion)이 바탕인 석면도 인체에 위험하다. 또한 규산염 암석의 분진을 흡입하면 폐에 심한 손상이 발생한다.

 

이런 폐질환의 근본적인 원인은 규산염이 물에 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폐에 입자가 침착하면, 그 자리에 일생동안 달라붙어 있게 된다. 이들은 자극과 상처를 유발하고, 이에 대응하는 면역반응 때문에 다양한 질병이 발생한다.

 

개개의 물질들이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공존하는 모습이 기묘하고 아름답다. 주기율표 상에서 탄소의 바로 남쪽에 있는 규소도 탄소와 비슷하게 생명현상과 같은 복잡한 과정에서 요구되는 길다란 분자 사슬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규소는 독자적으로 생명을 발생시키지 못하고, 휴면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두 지역의 연합으로, 다시말해서 탄소에 기초한 생물(인간)이 규소에 바탕을 둔 정보기술의 인공물을 탄생시켜 규소를 활용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한 발 앞서 발전한 탄소 유기체가 끊임없이 규소의 잠재력을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에, 머잖아 규소도 북쪽 이웃의 주도권을 역전시켜 지배적인 위치를 장악할지도 모른다. 현재도 인간이 제작한 기계에 인간이 배워야 하는 실정이다.

 

실리콘 고무도 인간의 삶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 고무는 잠수용 호흡관, 수액관과 같은 의료용 기구 등에 이용된다. 이렇게 다각도로 영향을 미치는 규소의 산화물인 실리카는 모래와 유리의 주성분이다.

 

특히 이 규소는 반도체의 바탕이다. 컴퓨터 부품은 규소 칩에 조절된 농도의 다른 불순물을 첨가시켰기 때문에 작동한다. 모래에서 캐낸 규소는 전자제품에 사용되는 반도체 부품제조와 동·식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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