팁 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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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니콜라스 케이지와 로지 페레즈가 주연한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영화가 있다. 피자 가게 단골손님 로버트와 종업원 필리스 사이에 있었던 실화다. 로버트는 어느 날 20년 넘게 그곳에서 일 해온 필리스에게 팁으로 복권이 맞으면 상금 절반을 나누어주겠다고 제의한다. 그런데 며칠 뒤 로버트에게 복권 600만 달러에 덜컥 당첨되는 꿈같은 일이 일어난다. 필리스에게 300만 달러의 팁이 굴러들어오는 순간이었다. 나누어서 받으면 매년 28만5700 달러를 21년 동안 받을 수 있는 거금이다.

카페, 호텔 등 접객업소에서 종업원에게 감사의 표시로 건네주는 사례금이 팁이다. 손님이 알아서 주는 돈이라 액수도 다르고 말도 많다. 하루아침에 필리스 같은 신데렐라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세금이나 추가요금 같은 존재가 돼 고객들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한다.

그래서 외국을 여행할 때면 현지의 팁 문화가 은근히 신경 쓰이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 얼마를 주면 좋을지 감을 잡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라 별로 어떤 때 팁을 얼마 정도 주면 적당하다고 알려주는 온라인 사이트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뉴질랜드에는 팁이라는 게 거의 없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가 먹은 만큼만 계산하면 끝난다. 하지만 외국인 여행자들이 늘어나면서 관광업소를 중심으로 팁 문화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팁 문화가 발달한 곳은 미국이다. 레스토랑을 이용할 때 대개 음식 값의 15~20% 정도를 팁으로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손님들이 건네주는 음성적 수입이 종업원들의 생계수단으로 중요한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서비스 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소득원이 된 것이다.

이런 구조는 미국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의 노예제와 뿌리가 맞닿아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노예에서 풀려난 노동자들이 고용주로부터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선심 쓰듯 던져주는 푼돈에 의지해 생활하던 게 팁 문화의 뿌리라는 설명이다.

그런 까닭에 팁은 선의로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비열하고 비민주적이라는 비판도 있었고 팁을 받으면 하층민이라는 멸시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도 팁 문화는 갈수록 뿌리를 더 넓게 뻗어나갔다. 식당과 호텔 종업원, 짐꾼들까지도 팁의 단맛에 서서히 길들여져 갔던 것이다.

미국의 요식업계가 박봉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을 끊임없이 끌어들일 수 있는 건 팁 문화 덕분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렇듯 팁은 어느 정도 사회적 효용성을 인정받으면서 여행자들을 통해 알게 모르게 다른 나라로까지 퍼져나갔다.

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보다 투명하고 공평한 임금체계로 팁 문화가 대체돼야 한다는 주장이 줄기차게 나온다. 봉사료를 계산서에 반영해 떳떳하게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자는 의견도 있다. 팁이 노예제와 관련이 있다는 태생적 한계와 팁을 받는 노동자들 대다수가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꽤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인간의 노동이 보다 명확한 잣대로 평가되고 정당하게 보상 받을 수 있어야 사회는 더 평등해진다. 팁 문화가 없다는 건 그런 의미에서 진보다. 얼마 전 뉴질랜드에선 정부의 고위 관리가 환대산업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팁 문화를 확산해나가자고 제의했다가 뜻밖의 반발에 직면했다. 팁이 사회적 편견에 기초한다는 비판도 있었고 팁과 서비스 질 사이에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는 반론도 있었다. 서비스의 질보다 팁 없는 사회에 대한 공감대가 훨씬 더 크다는 걸 다시 한 번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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