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낭창거리는 문장과 벗해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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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늘잠자리

▲책 소개=하늘잠자리
30년 넘은 손광성 수필 문학의 총결산. 그의 글은 요즘 흔치 않은 정통 수필로 평가된다. 피천득이 ‘한 편 한 편이 모두 시’라고 했을 정도로 예술적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수필은 말맛으로 쓰고 말맛으로 읽는다’는 저자의 주장이 느껴진다. 특히 말맛 가운데 그의 어린 시절의 아름답고 소중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우리들이 잊고 있는 그리움을 대변한다. 


▲대담자
고미선: 제주 토박이. 2015년부터 우도남훈문학관장을 맡고 있으며 우도초·중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문학놀이 수업을 하고 있다. 2016년 수필집 ‘빛의 만다라’를 출간했으며 도내 도서지역의 소외된 학생들에게 문화 혜택을 제공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정영자: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 수필가. 서귀포 ‘작가의 산책길’ 해설사로 활동하며 다양한 만남을 통해 서귀포의 문화와 자연을 널리 알리는 중.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리며 살고자 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어린 시절 각자의 보물이 있게 마련이다. 작가 손광성은 어린 시절 호루라기와 주머니칼, 렌즈가 세 개 달린 확대경을 보물로 간직했다. 호루라기를 불면 그 소리가 어느 악기 소리보다 크고 아름다웠고, 주머니칼로 나무에 조각을 했으며, 렌즈로 종이를 태우며 놀았다. 구멍 난 종이로 하늘을 올려다보면 낮에도 별이 보였다 한다. 작가의 고향은 휴전선으로 막혀 있어 지금은 갈 수 없다. 그리움, 어린 시절의 그리움은 아득하고 애잔하다.


각박한 삶 속에서 우리가 잊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실향민처럼 아픈 그리움을,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가. 지리적인 고향과 시간 속의 고향은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고향이란 공간에 있어도 그리움이란 추억에 다가가지 못한다면 고향의 존재 의미는 확연히 퇴색된다.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을 찾는 여정을 늦지 않게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정영자(시민의책위원회 위원, 이하 ‘정’): 이 책을 읽은 전체적인 느낌은 어떠셨나요?
고미선(이하 ‘고’): 아득한 과거로 나를 데려다 주었지요. 손광성 선생님의 수필세계는 지난날의 모든 것을 복원시켜주는 타임머신이었습니다. 현재 이 시간에 찾아낸 어린 시절의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삶에 철학적 의미까지 부여해 주었습니다.


정: 이 수필집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고: 선생님은 형상화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요. 어느 누구도 근접할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기법입니다. 관찰력이 대단하셔서 한 편의 글을 읽고 나면 대상을 해부한 느낌입니다. 자기체험을 바탕으로 해야 독자의 감동을 끌어낼 수 있는 요소들이 있는데, 이 수필집은 그것을 충족시켜 줍니다. 한 편씩 읽을 때마다 타임머신을 타고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데려다 줍니다.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아름답고 소중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거지요.


정: 책에 수록된 60여 편의 글 중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글은?


고: ‘나의 멸치 존경법’과 ‘수박 예찬’이에요. 누구도 생각하기 어려운 내용이 도마 위에 올려져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정: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면?


고: ‘은린옥척(은빛 비늘의 큰 물고기. 아름답고 큰 물고기를 이름)은 못되어도 ‘은린옥촌(은빛의 작은 물고기)은 되는 멸치를 멸시할 생각 없이 존경한다’는 표현에서 언어적 유희와 의미가 함께 와닿았어요. ‘죽어서도 은성 무공훈장을 자랑스럽게 번쩍이며 전사한 장군을 본다’는 표현과 ‘눈을 감고 죽은 놈은 한 마리도 없어서 하나하나가 날아오는 총알 같다’는 관찰력과 상상력이 좋았습니다. ‘대가리를 따지 않는 멸치볶음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거나 ‘멸치 한줌으로 한 솥의 국물을 내고도 남는 것은 도미나 민어는 불가능한 일이요.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멸치의 불변의 가치’ 등은 생활에서 가까이하지 않으면 찾아내기 어려운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수박예찬’에는 수박을 ‘연두색 바탕에 짙은 초록색의 얼룩무늬. 어찌 보면 풀밭에서 포복을 하는 예비군의 엉덩짝 같다’고 표현했는데 이 대목에서 재미있어 웃음이 나왔어요.

 

▲ 제주시에 위치한 한 커피숍에서 독서 대담을 나누고 있는 정영자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사진 왼쪽)과 고미선 우도남훈문학관장의 모습.

정: 가족에 관한 글 중 인상에 남았던 구절이 있다면?


고: ‘나의 귀여운 도둑’에서 손자에 대한 사랑을 글로 풀어내는데 제 마음과 어찌나 똑같은지요. ‘가끔 꼭 쥔 작은 주먹이 궁금해서 가만히 열어보는데 손바닥에 고물고물 상형문자 같은 손금들 첫 봄에 막 피어난 여린 목련꽃 이파리 같기도 한데 그 작은 손이 다녀갈 때마다 집어가네. 내 마음 한 줌씩 집어 가네. 얼마 남지 않은 잔고마저 가져가라고 가슴 열어놓고 기다리네. 나의 귀여운 도둑을’


이 구절에서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나이가 들면 주머니를 풀라는 말이 생각났고요.


정: 이 수필집의 장점은 어디에 있을까요?


고: 묘사가 잘 되어 그림을 보듯 합니다. 그렇다고 과장되거나 미사여구로 포장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서사적인 글이 아니라 압축되고 탄력이 있는 낭창거리는 문장으로 독자에게 읽는 기쁨을 주며,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발자취를 진솔하게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또한, ‘시중화, 화중시’(시와 그림은 통한다는 뜻)라는 말처럼 사물을 치밀하게 관찰하여 작가가 직접 그린 삽화들도 보는 즐거움을 더합니다.


정: 손광성 선생님의 글을 보고 현실에서 느낀 점은?


고: 옛 것들이 사라져가 아쉽습니다. 저는 제주에서 태어나고 죽 제주에서 살았는데요.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면서 돌을 들추면 나오던 보말, 바닷게 등이 떠오릅니다. 바다생물을 그날 먹을 만큼만 채취하던 토종 제주민의 생활은 어디에 갔는지 그리워집니다. 근래에는 글로벌시대라서인지 외국인도 많이 들어오고, 외지인의 유입도 거셉니다. 이젠 제주가 동남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제 안의 옛 추억들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 고민스럽습니다. 주변이 삭막해지지 않아야 글도 더 좋은 글이 나올 터인데…


정: 주로 어떤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시는지요?


고: 저는 체험을 바탕으로 한 삶을 풀어 놓으며, 독자와 내가 하나가 되어 울다가 웃다가 하려 합니다. 다른 이도 공감할 체험으로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싶습니다.


저는 학창시절부터 문예부로 활동하며 즐거움을 느꼈는데, 사회생활하면서 오랫동안 그 즐거움을 접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나를 되돌아보니 나를 위해 산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요. 이제껏 글쓰기는 살아온 나를 다독여주고 아픔을 치유해 주었습니다. 저의 일상을 치유하듯이 독자들에게도 치유의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 이 수필집을 누구에게 권하고 싶으신가요?


고: 인간의 정체성을 찾고 그를 통해 휴머니즘을 회복하는 것은 문학이 주는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필은 마음을 치유해주기도 하지만 지적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수필을 사랑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많은 이들이 읽어서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을 찾아나서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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