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눈이오름에 휴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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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중산간이 연둣빛으로 싱그럽다. 한창 만개한 찔레꽃이 짙푸른 들녘을 하얗게 수를 놓고 있다. 훈풍이 실려 온 달착지근한 향기가 코를 호사시킨다.

오랜만에 용눈이오름을 오른다. 높은 하늘 가까이, 제주의 숨결인 바람을 가장 잘 느끼게 할 수 있는 게 오름이다. 이 오름은 마치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는 것인 양 숨차지 않아 편하게 오를 수 있어 좋다. 한 무리의 말떼가 선두를 따라 거침없이 달리는 모습이 역동적이다. 눈을 느릿느릿 팔며 여유로운 기분으로 한껏 들뜬 것도 잠시다.

탐방로 주변에 빈 페트병이며 음료수 캔, 파란 풀밭에 널려 있는 하얀 휴짓조각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이다. 빈 몸으로 홀가분하게 와도 좋은, 구태여 먹을 것을 챙겨 오지 않아도 시장기를 느끼지 않을 거리다. 아름다운 경관을 보고 즐기는 것만으로도 영혼의 허기를 채우기에 충분한데….

불쾌한 마음을 누르며 걷는다. 몇 걸음 앞섰던 젊은 여성이 탐방로를 벗어나, 오름 정상으로 가는 가파른 지름길로 접어든다. 엄연히 경고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그쪽은 탐방로가 아니라며, 두 팔로 X자로 표시하며 불렀다. 흘깃 뒤돌아보던 여성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물어 붉은 흙이 발길에 흘러내리며 먼지를 일으킨다. 이미 지각없는 사람들의 발길에 채어 상처가 날 대로 난 곳이다.

도대체 우리의 도덕 수준은 어디쯤일지. 어릴 적부터 배우고 익힌 교육 아닌가. 비단 이런 일뿐 아니다. 관광지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 무심히 버리는 쓰레기가 자연을 멍들게 하고, 타인들에게 폐를 끼치는 걸 모를 리 없다. 그 순간 자신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이기심으로 인한 고질병이 문제다.

분화구 입구에 이르러서다. 정상으로 오르는 완만한 탐방로가 자갈과 붉은 흙으로 벌겋게 속살을 드러냈다. 바닥에 깔았던 부직포는 훼손되어 흔적도 없고, 고정시켰던 철근이 뼈대를 내보인다. 흉측한 모습은 위협적이라 여차하면 탐방객들이 다칠 위험이 크다. 불편한 발길이 당연히 탐방로를 벗어나 걷게 되고, 가뭄에 잔디는 죽어 흙길만 넓어졌다. 비가 오면 흙이 흘러내릴 것이고 골이 생길 게 뻔하다.

용눈이오름은 부드러운 능선에다 여러 오름 중에, 유일하게 세 개의 분화구를 갖고 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꼽힐 만큼 경관이 빼어나다. 관광객을 불러들여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기에 앞서, 지키고 보전하는 게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상태라면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채어, 순수한 본래의 모습을 곧 잃어버릴 것 같아 안타까웠다.

재원이 부족해 관리가 어렵다면, 차라리 얼마간의 입장료라도 받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재 담당자들도 관할 지역의 관광지나 명승지를 자주 살펴보라 권하고 싶다. 민원을 해결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곳곳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살펴 관리하는 게 진정 제주를 위하고 아끼는 일일 것이다.

사람도 힘들면 휴식을 취한다. 하물며 수많은 생명을 품어 키우는 대지는 생명체의 어머니다. 나 몰라라 하면 자연에 크나큰 빚이다. 이곳에도 당연히 휴식이 필요하다.

다른 오름에 비해 오르기 쉬워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그래서 더욱 상처 깊어 아픈 용눈이오름에 휴식년제를 제의하고 싶다. 되도록 사람들의 발길이 덜 닿도록, 헐벗은 탐방로를 복원시켰으면 좋겠다. 제주의 속내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제주를 대대손손 지키기 위해서 관광자원을 아끼는 정책도 갈급한 게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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