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곤 作 내적풍경.

다랑쉬오름 고승사

                                - 홍기표

 

다랑쉬오름에 절 하나 있다

비가 오면 문을 닫고 낮에만 문을 여는

그런 절이 있다

 

해가 뜨면

당근, 감자 심은 밭 잡초 같은 시름

밑거름으로 묻어놓고

다랑쉬오름에 올라

바다에 뜬 웃음소리, 울음소리

파도를 끌어 모으며

바람코지 정상에서 새경을 판다

 

메마르고 냉한 세상 펄펄 끓이는

다랑쉬오름지기 고승사

사람 냄새가 난다

마음 비운 분화구에 넉넉한 인심 담아

오는 사람 가는 사람 한 잔씩 따라준다

털털한 웃음까지 덤으로 넣어준다

 

밤이면 달이 와서 쉬는 오름

따뜻한 온기 지펴놓고

한나절 놀던 해, 자리를 비켜서면

그 절, 고승사도 터벅터벅 문을 닫는다

 

   
▲ 김정희씨가 홍기표 시인의 ‘다랑쉬오름 고승사’를 낭독하고 있다. 오른편은 시의 주인공 고승사씨의 모습.

오름 정상쯤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 아끈다랑쉬로 이끈다.
 

야트막한 자락 넘자 탁 트인 삼면의 바다, 누구의 아픔도 어루만질 듯 은물결 너른 품이다.

 

해서체의 병풍을 펼쳐놓은 다랑쉬오름을 배경 삼아 난장을 벌인다.

 

‘다랑쉬오름 고승사’, 이 시를 고승사님께 바치는 노래라고 운을 떼는 김정희다.

 

움직이는 절 한 채인 아버지뻘 고승사 어르신을 옆에 모셔놓고, 눈길 가닿자 으레 손을 잡는다. 오름이 껴안아 주는 온기까지 덤이 되자 날개 돋치는 시, 이에 부응하랴 낭송을 거드는 고승사선생의 어진 마음도 분화구 바닥까지 뜨겁게 휘돌아온다.

 

   
▲ 손희정씨가 김원정 시인의 ‘바다’를 낭독하고 있다.

참석한 홍기표 시인의 시의 터전을 바람결 시이소 타듯 오르내린다.

 

17년을 근무하던 다랑쉬오름, 교통사고 이후 편한 장소로 배려해준 덕에 덕천리 둔지오름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고승사선생이다. 막 휴지기에 든 오름 지킴이 일은 11월부터 근무에 들어간다고 한다.

 

오름 나그네들 사이에 커피 한 잔 권하던 유명세일까. 사람 냄새 물씬, 소박한 눈웃음이 한가득 번진다. 모순투성이 세상에 이름값 하는 사람 만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색소폰 연주에 고창송님, 아마츄어임을 강조하던 선 굵은 겸손에 어울림보다 더한 예술이 존재키나 할까. ‘사랑이여’, ‘영영’, 악보도 없이 ‘평양아줌마’ 등 프로 못지않은 연주에 일동 엄지 척, 산메아리 또한 깊어진다. 바쁜 일정에 시간을 낸 터, 난장팀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이른 퇴장이다.

 

   
▲ 스물네 번째 바람난장이 아끈다랑쉬 오름에서 진행됐다. 사진은 고창송씨의 색소폰연주 모습.

김원정의 ‘바다’, 세화문학회장의 시에 다랑쉬오름 앞으로 한껏 바다를 불러들여 놓고 낭송하는 손희정이다. 아끈다랑쉬로 초대된 바다의 심연을 잠시나마 누린다.

 

지나는 길에 참관하게 된 강관보 수필가도 “커닝 많이 하고 간다….” 다음번엔 꼭 참석하고 싶단다. 오름 주위로 산담 안 어르신들도 모처럼 함께한다.

 

멀찍이 여서도와 추자도까지 선명하게 돌아앉자, 일출봉도 시집 한 권 펼쳐 들고 귀 쫑긋 세워 자발적 동참이다.

 

   
▲ 바람난장 가족들의 모습.

점심 후 비자림으로 옮겨 새천년 나무 아래 김원정의 ‘비자에 대한 기억’을 손희정 낭송으로 막을 내린다.

 

식순을 벌이기도 전부터 구좌문학회원들이 마련한 요구르트에서 막걸리까지 간식 풍년 든 날이다.

 

‘메마르고 냉한 세상 펄펄 끓이는’ 한 점 바람난장의 뜻도 아니던가.

 

 

 

글=고해자

그림=김해곤

사진=허영숙

시 낭송=김정희, 손희정

색스폰=고창송

 

 

 

※다음 난장은 17일 오전 11시 ‘김영갑 난장’으로 성읍리 초원의 집에서 집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