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의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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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가족이 힘들어할 때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경권에 나오는 말? 나는 그럴 때 ‘이렇게 했다’는 말을 들려준다? 어떤 좋은 말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 주는 것일 텐데, 문제가 있다. 가까울수록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가까운 사람들은 더 감정적으로 반응하므로, ‘이런 안 좋은 얘기를 하면 우리 부모님은 화를 내니까, 앞으로는 말하지 말아야지.’로 가기 십상이다.

손자 지용이가 올해 중학생이 됐다. 아이와의 긴밀한 소통을 위해 지난 학기 초에 시도해 보았다.

노형에 살아 읍내의 우리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 부대끼는 게 어제 오늘 일인가. 학교와 학원에 쫓기다 가족행사에나 만나는 형편이다.

제 엄마가 아들이 처음 교복 입고 책가방 멘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왔다. 교복을 입으니 몰라보겠다. 감격해, 글 한 편을 써 곧바로 띄웠다. 제목이?〈스마트폰에 뜬 사진〉이다. 서울서 내려오기 전 예닐곱 살 적에 우리와 함께 살던 얘기에 곁들여, 나하고 한자 공부하던 회상도 넣었다. 하루 몇 자씩 학습시킨 게 일 년이 지나자 수백 자를 돌파했다. 어느 날, 그 가운데 100자를 쓰게 했더니 다 맞췄지 않은가. 하도 기뻐 아이를 업고 마당을 몇 바퀴 돌다 한쪽 팔이 탈골되는 바람에 병원 응급실로 내달렸던 기억을 빼놓을 수 없었다.

8년 전 얘기다. 얘기 속 주인공인 아이도 감회가 일었을 테다. 그때 공부하는 습관이 붙었던지 초등 6학년에 한자·한국사 검정에 붙고 영재학급에도 뽑혔다. 가족을 기쁘게 한 일이다. 편지 대신 메일로 사연을 띄웠다.

“우리 지용이, 중학생이 됐구나. 축하한다. 바뀐 환경이 낯설 거야. 가슴 뛰고 설레기도 하고 그렇지? 차분히 앞뒤 잘 살펴라. 그리고 앞을 재고 헤아리며 슬기롭게 헤쳐 나가려무나.

할아버지, 응원의 박수 보내마. 힘든 일이 있어도, 용기를 잃지 마라. 네 이름의 ‘용’이 용기 용(勇) 자잖아. 그렇지? 글 한 편 보내마. 한 번 읽어 보아라.”

곧바로 답장이 왔다.

“할아버지, 글 잘 읽었어요. 히히. 근데 할아버지, 저 친구 많아요. 그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친구가 많아 학교생활도 진짜 재밌고요. 그리고 저 드디어 고1 수학을 시작했어요. 저도 중학교 생활 잘 적응해서 좋은 모습 많이 보여드릴게요. 그럼, 저는 공부하러 갑니당!”

글 속에 공부에만 매달려 친구가 없다는 제 아빠 얘기를 슬쩍 곁들였더니, 시원스레 털어놓고 싶었나 보다, 친구가 많다고.

부처님 오신 날, 절에 참배하러 가자고 걔네 남매를 읍내로 오라 했다. 제 부모가 사정이 되지 않아 버스를 타고 오게 됐는데, 아이 전화를 받고 놀랐다. “20번 버스 타면, 50분 가까이 걸려요. 미리 나와 기다리지 마세요. 삼양 지나며 전화 드릴 테니까요.” 그래그래 했다. 중학교 1학년, 그새 이렇게 어른스러워졌나. 상대를 읽고, 앞뒤를 헤아리면서 시간도 셈하고 배려하려 한다.

아이에게 보낸 글이 크게 힘을 발휘한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걔에게 보낸 글 한 편에 공감했는지는 모른다. 주거니 받거니 메일로 조손 간에 흐른 공감의 여울. 닫혔던 마음을 활짝 열어 놓는 작은 계기가 됐으리라.

좋은 음식 덜퍽지게 사 먹이고, 푸른 지폐를 쥐여 주는 것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따뜻이 오가는 말, 아이 속으로 들어가 속을 자상히 짚어내며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처럼 소중한 일이 있으랴. 요즘 편지가 어디 쉬운가. 무미건조하다 하나 메일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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