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창회 수학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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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호/시조시인

지난 5월 말 고교시절 같은 반 동창 11명이 졸업 53년 만에 2박 3일 여정으로 전남 쪽으로 떠났다. 반창회를 조직 상부상조하며 지낸 지 몇십 년 만이다.

 

비행기에 오르자 춥고 배고팠던 고교 시절이 살며시 다가왔다. 수학여행이 있긴 있었나, 공납금 내기도 어려웠던 시절이라 갈 염두도 아예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 반에선 5명이 경주로 갔다 왔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목적지로 이동하면서 돌아가며 한 마디씩 한다. 우선 참석하지 못한 동창들을 점검한다. 이미 이승을 떠나거나 일본이나 육지에 살고 있지만 연락이 안 되는 반창들 이야기에 마음이 쓰렸다.

 

남원, 조천, 세화, 한경, 애월, 김녕 등에서 입학한 학생들의 기막힌 자취 생활 이야기. 인기가 좋았던 서울대 출신 생물을 가르쳤던 소설가 조재부 선생님을 비롯한 몇몇 스승님에 대한 일화도 꼬릴 물었다. 남원이 집인 학생들 몇이 주말에 걸어서 집으로 가다가 길을 잃고 밤새 해매다 아침에야 집에 도착했던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선지 양 회장이 지난밤 마님(아내)께 대접을 잘하고 나왔다며 너스레를 떨자, 덩달아 비아그라, 씨알리스에 대한 이야기로 간을 쳤다. 웃음보가 빵빵 터졌다.

 

남농 기념관 등을 둘러보고 유달산을 올랐다. 이난영 노래비 앞에서 ‘목포의 눈물’을 부르며 시내를 조망했다. 목포 신항으로 달려가 인양된 세월호 앞에서 노란 리본에 ‘극락왕생하소서’를 써서 달아놓고 기도도 드렸다.

 

유적지에서 왕인 박사를 만나 ‘소통과 상생’의 정신을 배우고, 국립나주박물관에선 마한 문화를 엿보기도 했다. 순천만국가정원에서 각양각색의 꽃들과 눈을 맞춘 후 하늘택시(SkyCuve)를 타고 순천만 갈대밭으로 날아갔다.

 

광활한 갈대밭은 푸른 바다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이곳엔 순천문학관도 자리하고 있다. 먼저 동인문학상 수상작 ‘서울 1964년 겨울’ 저자 김승옥 문학관으로 들어갔다. 영화 ‘안개’, ‘무진기행’ 도 희미하게 떠오른다. 또 한쪽은 작고한 동화작가 정채봉의 문학관이다. ‘동심은 영혼의 고향’이라는 말도 곱씹으며 둘러보았다.

 

구레 화엄사에서 국보 각황전과 석등을 보며 법계연기(法界緣起)를 곱씹어보기도 했다. 마지막 날은 곡성 장미축제장으로 갔다. 5월을 상징하듯 다양한 장미꽃들이 내 눈을 흔들었다. 비행장으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모두들 소감 한마디를 했는데, 좋았다고 이구동성이다. 내년엔 대구 쪽으로 가기로 했다.

 

동창들의 노을 진 주름살에는 고난의 세월만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상을 이탈한 낭만적 삶의 모습도 흐르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안데르센은 ‘여행은 정신을 다시 젊어지게 하는 샘이다’ 고 말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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