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 앞에서

                                      -한 림 화

 

내 바로 옆에 바싹 따라 붙어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송악산에 소낙비가 몇 줄기 긋는 듯하더니

짙은 먹구름 사이를 헤집고

빛줄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게

초막 창 너머로 생생하게 보였다.

 

저 빛의 폭포

나는 배낭을 메고 무작정 뛰었다.

 

빛소리쟁이가 사냥하고 싶어 자신을 오롯이

내던진 사진 한 장

액자 아래는 길게 제목이 붙어 있었다.

 

아!

하는 감탄의 사이

나머지

비가 너슨너슨 내렸다.

   
▲ 강부언 作 三無日記 - 초원의 집(김영갑선생의 숨결이 깃든 곳).

표선면 번영로 2288번지. 초원의 집 가는 길은 ‘아차!’ 하는 순간 지나치게 된다.

 

큰 길가 아래 자그마한 샛길이 펠롱 보였는데 차가 달려오던 속도를 늦추지 못해 다시 먼 길을 유턴해서 돌아와야 하는 수고로움이 벅적거리며 핀 꽃 앞에 살랑 녹아내린다.

 

하루 일과를 야생화 돌보기로 시작하고 또 야생화 돌보기로 끝내는 주인장 박창언님은 천 사백 평정도 되는 삼나무밭을 개간하여 꽃을 심고 나눠주면서 이곳을 일궜다. 원하는 만큼은 아니어도 이제 어느 정도의 규모가 갖추어져 산수국 전시회도 열 수 있게 되어 제주산수국 200여 종의 변종들이 큼지막한 화분에 조신하게 앉아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외국종으로 떡갈잎 산수국과 법정사 냇가에서 발견하여 “법정”이라는 명명이 붙은 산수국의 자태 앞에서는 누구나 넋 놓고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

 

현재 한라산수국동호회에서 명명 작업을 계속 진행 중인 것들도 있다 하니 제주도가 더 어여뻐지겠다. 넉넉한 미소와 조곤조곤 설명해 주시는 온화함이 사람을 주변에 불러들이는가?

 

박창언님은 고인이 된 김영갑 사진작가와의 인연으로 유명하다.

 

80년대 제주 오름에 매혹된 김영갑 작가는 우연찮게 이곳을 찾았고 박창언님은 그에게 흔쾌히 집을 제공해 주었다. 그를 삼촌이라 부르며 사진기술을 사사받은 큰아들 박훈일님은 현재 김영갑 갤러리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 김정희씨가 한림화 작가의 단편소설 ‘찰나 앞에서’의 일부를 낭송하고 있다.

김영갑 작가가 기거했었다는 곳을 슬몃 들어서니 창고였던 곳을 보수하여 수수한 겉모양이 따뜻한 햇살 아래 적요하다. 저 좁은 곳에서 외로움과, 지독한 가난과,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함을 사진 하나로 감싸며 찍어 온 풍경들이 황홀하게 인화되어 피어났구나 생각하니 작가가 수없이 내었을 문 앞 발자국에 평생을 사랑했던 오름에 바람이 서늘하게 따라와 발을 포개는 듯하다. 그 앞에 가득 놓여진 산수국 묘목들이 존존한 화분에서 자라는 게 눈길 자꾸 닿는다.

 

이곳에서의 난장은 모다 든 사람들에게서도 흙냄새가 난다.

 

홍인부 제주자연예총 회장, 이석모 제주자연예총 부회장을 비롯하여 김창부 한라식물사랑회장님도 모이니 꽃에 서건 사람에게 서건 풀 내음 가득했다.

 

거기에 문남일 선생님이 톱으로 연주하는 장안사,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곡, 고향의 봄까지 숨죽여 숨죽여 들었다. 톱에서 저런 아름다운 소리가 나다니 귀뚜라미가 찌륵찌륵 우는 듯하고 활대가 톱날을 켤 때마다 몸 어딘가에서 미세한 세포들이 깜빡 켜지는 듯하다. 조용하면서도 무어라 표현 할 수 없는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

 

   
▲ 문남일씨가 톱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이어 김정희 님이 한림화 선생님의 단편소설 '찰나 앞에서' 일부를 낭송했다.

 

한라산의 노을을 발표하면서 문단의 집중을 받았던 선생님의 필체의 힘이 이번엔 김영갑 작가에게 옮겨와 한 컷의 작품을 위해 작가가 얼마나 치열하게 오름으로 들판으로 내달렸을지 알려주었다.

 

파란색, 분홍색, 하얀색, 그리고 온통 초록색이 뒤덮인 초원의 집 안에서 오늘은 산수국의 그늘도 시(詩)다.

 

 

글=강영란

그림=강부언

사진=허영숙

톱 연주=문남일

작품 낭송=김정희

음향·감독=이상철

 

※다음 바람 난장은 24일 오전 11시에 대정현 역사 문화포럼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