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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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단비를 감우(甘雨)라 한다. 하지만 기다림 끝에 내리는 간절함 때문일까. 뜻에서 여러 갈래를 지닌 다의적(多義的)인 어휘다.

꼭 필요한 때에 알맞게 내리니 단비일 수밖에 없어선지, 이름도 여럿이다. 식물이 자라기에 알맞게 내린다고 ‘자우(慈雨)’라 함은 생명을 감싸 자애롭다 함이요, 만물을 적셔 주는 좋은 비라고 ‘택우(澤雨)’라 함은 다사로운 비의 그 은택을 뜻함일 테다.

비슷한 말에 ‘녹우(綠雨)’가 있다. 푸를 녹(錄) 자가 들어 있어, 말만 들어도 눈에 푸른 기운이 감돈다. 늦봄에서 여름 사이 풀과 나무가 한창일 때, 푸른 계절에 내리는 비를 일컫는다.

농부들이 비를 기다리며 바삭바삭 애태우는 때가 봄철 파종기라, 감우라 하고 나면 곧바로 청명에 내리는 ‘곡우(穀雨)’를 떠올리기도 한다.

좋은 절기에, 오랜 기다림 뒤 내려 단비다.

절기를 소홀했는지 그 단비가 내리지 않아 농민들 애간장을 태운다. 오죽했으면 『춘향전』에서도 ‘갈민대우(渴民待雨)’라 했을까. 이몽룡이 큰 벼슬길에 올라 남원 고을에 당도할 날을 눈이 빠지게 기다려 왔노라고, 춘향 모 월매가 푸념하는 대목에 나오는 말이다.

소설 속의 가뭄은 그야말로 불가물로 한발(旱魃)일 터. 귀신이 주관한다는 그 가뭄이다. ‘불가물이 석 달째 계속돼 모든 생물이 말라 죽을 지경이었다.”라 한 걸 보면, 한발엔 흉년 들 수밖에 없었다.

6월 들어 비가 내리지 않아 농심이 타들어 갔다. 24절후의 아홉 번째 망종(芒種)은 수염(까끄라기) 달린 곡식의 종자를 뿌리기에 적당한 시기를 뜻한다. 보리를 베고 볏모를 심어야 하니, 농촌이 연중 가장 바쁠 때다.

올 망종엔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심하다. 육지는 40년 만이라 한다. 논이 쩍쩍 갈라지고 폴폴 흙먼지를 날리니 하늘을 우러러 농부들 한숨이 깊어질 수밖에. 저수지며 지하수까지 바닥났다니 예삿일이 아니다.

제주에도 한때 비가 내리지 않아 밭이 타들어 갔다. 조와 콩, 깨 파종 시기를 놓쳐 농부들이 발만 동동 굴렸다. 연일 불볕더위에 비가 오지 않았다. 읍내에 살면 농부들의 깊은 시름이 눈에 보이고 귀로 들린다.

힘에 부쳐 묵히던 밭을 인근의 양재봉 수필가에게 권했더니, 일언지하에 농사를 짓겠노라 한다. 내친김에 밭을 안내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불화살 같은 햇살에 밭이 타들어 가슴이 아리다. 버려진 묵정밭은 작은 황무지가 돼 있었다. 더위 속에 자운영과 망초들이 우쭐대며 키를 재고 있다. 밭을 둘러보며 양 수필가가 하는 말. “먼저 밭을 곱게 단장하고 나서 지심(地心)을 깊게 하는 작업을 해야지요.” 황폐한 밭을 눈앞에 두고 한 그의 말은 감동이었다.

감천(感天)인가.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바로 뒷날 비가 오는 게 아닌가. 5~30㎜라 하므로 한쪽 귀로 흘려들었는데 아니다. 작지 않은 비였다. 지적지적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종일 이어지는 비….

양 수필가에게서 메일이 왔다. “흡족하지는 않았지만 시원스레 비가 내렸습니다. 선생님 밭에 이번 농사를 포기하려 했는데, 예상보다 이른 비로 늦었지만 콩을 심을 준비를 해볼까 합니다. 선생님의 은혜와 저와의 인연을 하늘이 알아차린 모양입니다.”

앞으로 양 수필가가 철철이 마늘과 콩, 양파며 보리농사를 지으리라. 농사만 짓지 않고 수필도 함께 경작하리라. 농사를 풍작하면서, 그의 문운도 함께 창대하기를 빌고 싶다.

이심전심, 아무래도 이번 내린 단비는 그가 부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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