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한 눈 팔아서 모슬포의 아픔 못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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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옛 대정면사무소 청사

피난민들쾅 우리 지주사름덜이

뜰린 게 뭣이셔,

배고프민 먹어사,

날 어두우민 잠자사,

추우민 입어사 허느니.

 

소낭가쟁이 우이

비 피헐만인 노람지만 덖어져도,

그보단 나슨 고대광실이 어섰져.

 

살당보민 눈앞이 배려지는 것만 배리멍 사는 거라

호끔만 부애나도 사나놈덜은

토백이영 피난 온 아으덜이 쌉기도 허고

해끄만 헌 모실개에 고아원만 시개썩이나 셨져.

 

돌아보민 경해도

인정하난 첨 좋아신고라

우리광 한디 아팡허곡 지꺼짐도 허던 따문산디

전장 끝난 서너 해 후제

이녁네 고향으로 가분 사름덜이

요시에도 드문 드문 기벨이 오곡 허주.

 

-김웅철의 ‘피난시절 대정’ 일부

 

『하늘도 모슬포에선 한 눈을 팔더라』

 

▲ 유창훈 作 비목.

 

대체 모슬포에 무슨 일들이 있었기에, 모슬포 시인 이애자가 최근에 펴낸 시집 제목을 이렇게 달았을까.

 

모슬포는 대한민국 최남단으로서 따뜻할 것 같지만, 바람코지라고 불릴 정도로 바람이 거센 곳이다.

 

그러나 자연적 시련이야 그렇다 치자. 20세기 첫 페이지가 열리자마자 이재수란 즉, 신축교란이 있었고, 일제강점기의 알뜨르비행장과 갱도진지, ‘백조일손’으로 일컬어지는 <4·3>, 육군제1훈련소(강병대)로 상징되는 <6·25> 등의 역사적 시대적 격랑의 한복판에 모슬포가 있었다.

 

똑같은 제주의 땅덩어리인데도 왜 서남쪽에만 이렇게 공평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필시 하늘이 잠시 모슬포에서 한눈을 팔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김정희씨가 김웅철씨의 시 ‘피난시절 대정’을 낭송하고 있다.

<6·25>가 있는 유월의 마지막 토요일, 스물여섯 번째 ‘바람 난장’은 옛 대정면사무소 청사에서 펼쳐졌다.

 

이곳은 제주 관련 자료와 사진 8200여 점이 보관 또는 전시되고 있는 곳이다. 예를 들면 모슬진성을 헐어서 모슬포 부두를 만든 모습(1920년대 말)에서부터 대정현청사를 헐어서 대정면청사를 만드는 모습(1930년대), <4·3> 당시의 성문, <6·25> 당시 이승만 대통령 부부 알뜨르비행장 도착 모습, 그리고 개발의 연대를 헤쳐 온 모슬포인들의 삶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귀중한 사진 자료들이다. 이른바 ‘제주역사의 보고’인 것이다.

 

▲ 스물여섯 번째 바람난장이 대정현 역사 문화포럼에서 진행됐다. 사진은 바람난장 가족들의 모습.

이 사진 자료들은 시인 김웅철(대정현역사문예포럼 이사장)이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워싱턴 DC 등 국내외를 숱하게 찾아다니며 모은 것이다. 그야말로 ‘밭돌렝이’ 몇 개 살 돈을 이 일에 바쳤다. 그가 이렇듯 역사 자료 수집에 온몸을 바치고 있는 데에는 그만한 곡절이 있었다. 그의 가문에는 추사 김정희 선생과 두터운 친분을 다졌던 선조의 유품이 전해지고 있었는데,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빠찌(딱지)’ 만들며 훼손시켜 버린 것이다. 그러한 일련의 죄책감이 그를 역사 지킴이가 되게 했다고 한다.

 

그는 시집도 냈다. 제목도 특별하다. 『어느 보통사람이 제주어로 쓴 제주-대정의 삶』이다.

 

시 낭송가 김정희씨가 이 시집 속의 시 한 편 ‘피난시절 대정’을 낭송하는 동안, 67년 전 모슬포의 모습을 증언하듯 창밖에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시 낭송가 오상석은 신동집의 ‘목숨’을 낭송하며 ‘한국전쟁’을 환기했다.

 

이 지역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김재현은 무명용사의 희생을 그린 국민 애창곡 ‘비목’을 연주한 데 이어 잔잔한 ‘타이스의 명상곡’으로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시 낭송가 손희정의 기획으로 즉석 이벤트도 곁들여졌다. 군복 무늬를 이미지화한 광목천에 참가자 모두가 자기 이름을 쓰고 손바닥 도장을 찍어 호국선열들의 넋을 기리는 ‘생명꽃’을 피워냈다.

 

피해자만이 용서할 자격이 있다고 한다. 모슬포가 호국의 성지였듯이, 이제는 제주 다크 투어 1번지로, 세계평화와 희망의 성지로 거듭 나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글=오승철

그림·사진=유창훈

연주=김재현

시 낭송=김정희·오상석

퍼포먼스=손희정

음향·감독=이상철

 

 

※다음 바람난장은 7월 1일 오전 11시 모슬포오일장과 삼다도소식노래비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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