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세대’에 대한 사과와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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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편집국장

호주하면 캥거루와 코알라, 오페라 하우스가 떠오른다. 이는 호주 여행 여부와는 상관없다. 우리에게는‘쌕쌕이’로도 유명하다. 한국 전쟁 때 혁혁한 전공을 세운 호주 전투기를 말한다. 제트 엔진의 소리가 ‘쌕쌕’ 한다고 해서 ‘쌕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아름다운 나라에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가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호주정부는 1910~1970년대 원주민 아이들을 대상으로 강제 격리 정책을 폈다.‘백인사회로의 동화’라는 이름 아래 원주민 아이들을 가족으로부터 격리해 교회나 정부시설 등에 수용해 영어 등을 가르친 후 동화됐다고 믿으면 시민권을 주었다. 최대 10만명으로 추산되는 아이들이 희생양이 됐다.

▲‘도둑맞은 세대’ 이야기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은 2008년이다. 당시 케빈 러드 호주 총리가 의회에서 사과 연설문을 발표 하면서이다. 러드 총리 사과 연설은 총선에서 12년 만에 정권교체를 일궈낸 후였다.

그는 호주 전역에 라디오와 TV로 생중계된 연설을 통해 “이 순간은 진실과 화해할 시간이며, 과거의 불의를 인정할 시간이다”고 했다. 사과는 통렬했다. “호주 정부를 대표해서, 호주 의회를 대표해서 사과드린다”고 했다. 가족을 붕괴시킨 데 대해, 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찢어놓은 것에 대해.

물론 정치적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1997년 인권과 기회균등위원회가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라(Bringing Them Home) ’라는 보고서를 발간했지만, 당시 집권층은 현세대가 과거 세대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이유로 사과를 거부했다.

그는 달랐다. “1970년이 고대 역사 속의 아득한 옛날이 아니다. 그때 벌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정치권에 호소했다.

비원주민 출신의 호주 국민에게는 ‘역지사지’를 당부했다. “도둑맞은 세대의 비극이 나에게 일어났다고 한번 상상해보라고.”

▲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은 힘이 없다. 러드 사과 후 여ㆍ야가 합동정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총리와 야당 당수가 공동 의장을 맡았다. 원주민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도 추진됐다. 이런 행동으로 한때 10만명까지 줄었던 원주민 수는 46만명으로 증가했으며, 연방정부 장관과 5명의 상ㆍ하원의원을 배출했다.

제주 4·3이 내년으로 70주년을 맞는다. 앞서 특별법이 제정되고, 대통령 사과도 있었다. 4·3평화공원이 조성되고 다양한 사업이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공허함을 떨칠 수 없다. 모두가 화해와 상생을 이야기하지만, 행동이 없기 때문이다.

도둑맞은 세대에 대한 사과와 행동은 적개심 가득한 주먹을 풀고 화해의 양팔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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