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베일을 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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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진 동화작가

난 저녁 시간에 산책을 즐기는 편이다. 아홉시만 되면 어김없이 아내와 같이 산책을 하기 시작한 지가 오래전 일이라 이젠 습관이 됨직도 한데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못나가는 날이 허다하다. 산책을 하며 주변 모습들을 눈에 담아보지만 매번 낯설게 만 느껴지는 것은 웬일일까?

 

제주 중산간만이라도 보존되기를 기원했지만 언감생심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어제가 다르고 오늘도 다르다. 자연환경은 안중에도 없다. 제주는 지금 그야말로 번데기 과정을 거치지 않는 불완전 탈바꿈에 탈바꿈을 계속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 며칠 산책을 하지 못한 지난 오월 무렵으로 기억된다.

 

달이 정말 밝은 저녁이었다. 그날 산책은 달빛을 따라 어릴 적 추억이 살아있는 들판을 돌아오기로 아내와 약속했었다. 그곳엔 매타세콰이어 숲길을 연상할 만큼 삼나무들이 도열해 있어 풍광이 수려하고 조금만 더 한라산 쪽으로 올라가면 몇백 년 된 팽나무며 솔바람 소리도 덤으로 들을 수 있는 나만의 산책길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게 어인일인가? 올라갈수록 어딘지 낯설게 느껴졌다.‘저 엄청난 불빛의 정체는 도대체 뭐지?’하고 느끼는 순간 들길이 사라졌다. 아니나 다를까 도열해 있던 삼나무들이 모두 베어지고 없었다. 아니 이곳에서 시내도 다 보였다니 정말 할 말을 잃었다. 도열해 있던 삼나무들이 쓰러진 자리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허허벌판엔 승리를 만끽하는 듯 중장비가 똬리를 틀고 들어앉아 있는 모습이라니.

 

분개를 한 들 무슨 소용이랴!

 

부동산 광풍은 지금도 멈출 줄 모르고 성공한 신중년(?)들이 노후를 꿈꾸는 곳 제주. 베이징 사람들이 주말이면 날아오는 휴양지 제주. 중국1세대 부자들이 상하이뒤뜰이라 부르며 몰려드는 제주가 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상하이 푸동 공항에서 한 시간 여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가 아닌가? 그야말로 그들이 뒤뜰이라 할 만하다. 시장경제논리 위에서 헐떡이는 제주가 더 이상 보물섬이 아니며 우리들이 생각하는 천혜의 땅도 아니다.

 

제주가 베일을 벗고 있다.

 

아름다운 오솔길은 허물어져 차로가 생겨나고 있고 들길을 걸어도 이젠 솔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수려한 자연환경으로 세계가 인정한 보물섬에 분양호텔을 홍보하는 현수막으로 나부끼며 바람 타는 섬 제주에 돈바람이 불고 있다. 제주들판엔 자동차로 들끓고 연립주택에다 정체모를 건물들까지 점령해 있으니 도무지 제주 같지 않다. 작은 마을위에 대형관광단지가 들어서고 있으며 영리병원을 포함한 휴양형 테마파크들이 즐비하고 말들이 뛰놀던 중산간은 초록은커녕 콘크리트 일색이다. 베일을 벗고는 신비를 감추고 있다. 베일에 가려있을 때 신비감은 극에 달하고 사랑을 느끼게 되는 법이다. 민낯을 드러낸 제주 비경(祕境)은 비경(悲境)이 되고 있다. 슬픈 일이다. 대중교통 우선차로제 공사로 시내 도로가 북새통을 이루고 가로수들이 뽑혀나가고 있다. 차량 뒤범벅으로 부랴부랴 확장한 농로엔 불빛이 즐비하고 저녁에도 제주는 공사 중이다. 하지만 어쩌랴? 베일을 벗는 제주에 잘 적응해야 살아남을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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