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혼술, 혼영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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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의. 수필가

혼밥, 혼술.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는 걸 축약한 조어들이다. 혼밥 혼술 시대, 혼밥 혼술족, 전혀 예상치 못했던 언어들이 가감 없이 입길에 오른다. 혼자 영화 본다는 혼영족도 그렇다. 생소한 어휘들이다.

밥 먹고 술 마시는 게 삶의 필수 조건인 건 다 알지만 어떻게 먹고 마실 것인가, 하는 문제에 맞닿으면 대답이 모호해진다. 진수성찬을 먹을 수도 있고 혼자 잔술을 기울일 수도 있으니까.

먹고 마시는 건 만족 불만족, 행불 행의 잣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엔 그 통설이 설득력을 잃어가는 조짐이다. 잘 차려진 밥상에서 밥 먹고 술 마시기를 마다하랴마는 어긋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나는 한 해에 두 번 여행길에 나선다. 혼자 걷고 혼자 산엘 오르고, 한 번에 열흘쯤 섬과 결별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혼밥과 혼술이 몸에 배었다. 혼자 여행길에 나서면 먹고 마시는 게 꽤 신경이 쓰인다.

처음엔 어색했다. 혼밥 혼술 판다고 써 붙인 데도 없고, 혼자 식당에 들어서는 것도 객쩍었다. 내가 터득한 것은 혼자 다니는 여행객을 반갑게 맞아주는 식당이 흔치 않다는 거다.

어느 해 이맘때, 남해안 전복 주산지라는 곳에서의 일이다. 섬을 둘러보고 내친김에 전복죽으로 점심을 때울 요량을 했다. 식당마다 붙여진 전복 메뉴가 눈길을 끌었다. 그중에 유난히 큰 글씨로 전복죽 전문이라고 써진 식당에 들어섰다.

그런데 “어서 옵쇼” 할 때와는 달리 혼자 들어서는 나를 보는 시선이 냉랭하게 변하는 게 느껴졌다. 자리에 앉으면서 전복죽 한 그릇을 주문했다. 잠시 후 한 젊은이가 오더니 여기는 전복죽 두 사람 몫이 기본이라며 한 그릇은 곤란하다고 난색을 표했다.

부려놓았던 배낭을 챙겨 식당을 나서자니, 꼭 풋감 씹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편의점이다. 다양한 먹거리가 진열돼 있었다. 앉아서 요기할 탁자도 갖춰져 있고 길을 묻는다든지, 간단한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부담 없이 커피를 마시며 잠시 휴식도 취할 수 있어 외려 여유와 안온함이 느껴졌다.

난 그때부터 혼밥·혼술족이 되어갔다. 혼밥 먹고 혼술 마시고, 비오는 날이면 혼자 영화도 보았다. 혼영족이 되는 거다. 또 한 번은 엑스포가 열렸던 곳이라고 현수막이 펄럭이는 도시에서 맞닥뜨렸던 머쓱한 기억이다.

좀 이른 시간에 ‘아침식사 됩니다.’라고 써 붙여진 식당 문을 열었다. 내 행색을 살피던 여인이 혼자냐고 묻기에 고갤 끄떡였다. 자릴 권하는 게 소 닭 보듯 했다. 거저 밥 먹겠다고 찾아온 것도 아닌데 이렇게 데면데면하다니, 뜨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곧 상이 차려지는데 반찬 접시 놓는 게 공 던지 듯했다. 반찬수를 헤아려보았더니 무려 열두 가지나 되었다. 밥과 국까지 열네 가지다. 갓김치와 젓갈, 생선 조림, 다 맛깔스럽게 보였으나 내가 젓가락을 댄 것은 두세 가지에 불과했다. 혼자 먹는 밥상이라 서너 가지면 족할 텐데, 반찬의 종(種)도 그렇거니와 양(量)도 만만치 않았다.

게 눈 감추듯 밥 한 그릇을 비우고 식당을 나섰다. 어차피 혼자 다니는 여행인데 혼밥이나 먹을 걸 하는 후회가 씁쓸하게 씹혔다. 혼밥, 혼술, 혼영 시대라는 말이 거저 화제가 되는 게 아님을 실감했던 대목이다.

혼밥이면 어떻고 혼술이면 어떠랴. 한두 번 푸대접 받았다고 여행을 멈출 내가 아니다. 황혼이 물드는 저물녘에 밤배를 타고 훌쩍 섬을 떠나고 싶다. 여운을 남기듯 울리는 뱃고동 소리가 아릿하게 귀청을 파고든다. 여행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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