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진우 경남경찰청장이 경찰서를 방문한 자리에서 여경들의 요청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8대 경남지방경찰청장에 부임한 박진우 치안감(55)은 취임식에서 동의보감에 나오는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을 인용했다.

통하면 아프지 않고 안 통하면 아프다는 말이다. 혈액순환이 안 되면 몸이 아픈 것처럼 조직도 소통하지 않으면 병이 들고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박 청장은 말은 입이 아닌 귀로 하는 것이 소통이라고 했다. 직원들의 얘기를 잘 듣고 의견을 받아줘야 조직이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공고 출신, 간부시험에 합격=박 청장은 1962년 6남매 중 장남으로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10년 동안 하던 교사직을 그만두고 농사를 지었다.

금악초, 한림중을 졸업한 그는 가정 형편 상 제주시에 있는 일반계 고교에 갈 수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조국 근대화를 기치로 내걸면서 당시 공고 진학 붐이 일었다.

한림공고에 입학해 선반·밀링·용접을 익혔으나 적성에 맞지 않았다. 학창시절 공부를 하지 않고 놀면서 방황했다.

대학에 가기 위해 고3 때 벼락치기로 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성적 30% 안에 들었지만 대입에 낙방했다. 재수를 해서 제주대학교 농화학과에 입학했다. 나중에 법학과로 전과했다.

“학창시절 갈등과 방황을 많이 했죠. 의경 2기로 입대를 하면서 경찰에 대해 알게 됐죠. 늘 현장 중심에서 일하는 경찰관이 되고 싶었죠. 의경생활을 하며 처음으로 영어공부를 시작했죠.”

제대 후 그는 한림읍에 있는 친척 과수원 창고를 공부방으로 삼아 틀어박혔다. 혼자 밥을 해먹으며 1년간 공부했다. 24시간 중 20시간을 책을 보며 시험에 매진했다.

“법전을 봐도 이해가 안 돼 하루에 수 백 페이지를 읽고 또 읽었죠. 반복해서 보니 나중에는 이해가 됐죠. 1년간 독학으로 공부해 합격했다고 하니 동기들은 믿지 않았죠. 대개 학원을 다니고 4년을 공부해야 경찰 간부에 합격했죠. 37기 합격자 중 대학을 마치지 못한 공고 출신은 제가 유일했죠.”

   
▲ 박진우 경남경찰청장이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창원시에 있는 전통시장을 방문한 모습.

▲해안경비단 창설 주도=1989년 청와대 경비단 소대장으로 경찰에 입문한 그는 중대장(경감), 안내과장(경정)까지 시험으로 승진했다.

경정으로 승진 후 2년 6개월 동안 고향에서 근무했다. 제주·서귀포경찰서 경비교통과장에 이어 1999년 901전경대장을 맡았다. 전경대장을 맡은 그는 제주해안경비단을 창설을 주도했다.

“2200명의 전경대원들이 해안초소에서 먹고 자며, 총을 들고 매복하다보니 근무환경이 매우 열악했죠. 사람에 의한 전방 감시에서 벗어나 레이더와 적외선 감시장비를 도입해 낙후된 시스템을 바꿔버렸죠.”

내친 김에 그는 거점지역마다 별장식으로 중대 건물을 지었다. 전경들은 펜션과 비슷한 통합 초소에서 생활하며 비상 시 출동했다.

현대화된 제주해양경비단 창설에 대해 상관들은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국비를 따내기 위해 진념 재정경제부 장관이 방문할 당시 해안초소에서 직접 브리핑을 했다.

“그 때 청와대 경비단 안내과장 출신 선배가 본청 경비국장으로 있었죠. 내 말은 전적으로 믿었고 도와줬죠. 내가 제주를 떠난 이듬해인 2000년 제주해양경비단이 창설하기에 이르렀죠.”

▲우면산 산사태 피해를 막다=서초경찰서장(총경)으로 있던 2011년 7월 우면산 산사태는 잊지 않는 못할 사건이었다.

당시 서울에는 하루에만 301㎜의 비가 쏟아졌다. 백 년만의 기록적인 폭우였다.

우면산에서 쏟아진 빗물로 오전 7시40분 왕복 8차로인 남부순환로 일부 차로가 잠겼다. 서초서 경찰관들은 즉시 신호를 기다리던 600여 대의 차량을 통제하고 우회 조치했다.

통제 30분 후 우면산이 무너져 남부순환로를 삼키고 아파트 4층까지 흙더미가 덮쳤다.

“출근길에 나선 차량 600대를 남부순환로로 통과하지 못하도록 막았죠. 그대로 갔다면 수 백명이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 과거 한강 다리가 순식간에 침수됐던 장면을 목격한 박재영 경사가 있었죠. 박 경사가 급히 차량을 통제해야 된다고 해서 그대로 따랐죠. 출근시간에 왕복 8차로에 빨간 신호등을 켜고 통제하자 항의가 빗발쳤죠. 30분 후 거대한 흙더미가 도로를 덮칠 것이라고 누구도 생각을 못했죠. 수 백명을 살린 박 경사는 경위로 특진을 했죠.”

   
▲ 박진우 청장이 캐나다 경찰대학 연구원으로 파견 당시 가족과 함께 한 모습.

▲가족과의 약속을 지키다=대통령 외부 행사 시 경호를 맡은 22경찰경호대장과 경찰청 경호과장 등을 역임한 그는 부인 김수연씨(48)와 1남 2녀를 챙길 시간이 없었다.

2012년 경무관으로 승진해 대구경찰청 차장을 역임하자 다소 여유가 생겼다.

그는 가족과 동반, 1년간 캐나다 경찰대학에 연수를 가기로 했다. 캐나다에 가려면 토익 점수가 필수였다. 대구청 차장 당시 업무를 마치면 하루 종일 영어공부를 했다.

구내식당에 가는 시간도 아까워 집무실에서 김밥을 먹으며 공부를 했다. 목욕을 하거나 잠을 자는 동안에도 영어회화를 틀었다. 자격요건인 토익점수(785점)를 6개월 만에 달성했다.

“제가 시험을 통과 못하면 경무관의 해외 연수는 다음에는 없었죠. 힘들게 공부한 끝에 가족들과 함께 캐나다에 가는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죠.”

▲공부하는 경찰청장=2014년 본청 수사기획관에서 2015년 치안감을 승진하는 그는 본청 수사국장을 맡게 됐다. 전국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을 살펴보며 하루 종일 수사 업무를 지휘했다.

바쁜 가운데도 그는 경찰수사제도에 대한 논문을 쓰고 연세대 행정대학에서 석사를 취득했다. 현재 박사 논문에 도전하고 있다.

“남들보다 경쟁에서 떨어졌던 저는 경찰에 입문한 후 2가지를 다짐했죠. 남들이 10시간 일하면 30분을 더 하고, 남들이 쉴 때 책 한 장이라도 더 보자고 약속했죠. 그래서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많이 외롭고 힘들었죠.”

그는 성실과 열정으로 경찰 최고위직에 오르면서 초심을 잃지 않고 있다. 승진 때마다 고향에서 잔치를 열겠다는 것을 극구 반대했고, 동창들에게 플래카드도 내걸지 못하도록 했다.

대신 2011년 모교 후배인 금악초 학생 45명을 서울로 초청해 꿈과 희망을 심어줬다.

금악리에는 어머니 양인자씨(79)가 지금도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고향에서 근무하면 한쪽으로 편향되거나 공평하지 못할까봐 총경 승진 이후 내려오지 않고 있다.

박 청장은 “경찰의 기본 업무는 수사와 단속입니다. 누구를 봐주거나 편들어주면 안 되죠. 올바르고 공정하게 처리해야 한다”며 “비록 몸은 떠나있지만 늘 고향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