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 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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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일. 전 중등교장

60년 지기 친구들 셋이서 올레 걷기를 나섰다. 제주 올레가 만들어진 것이 10년이 다 돼 가지만 핑계답게 어느 코스도 완주한 곳이 없다. 변명 삼아 퇴직하면 걸으려고 일부러 남겨둔 숙제라고 떠들며 다녔다.

그동안 한 코스가 보통 20㎞ 내외이고 시간도 대여섯 시간은 족히 잡아야 완주할 수 있는 점들이 솔직히 좀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코스를 두 번에 나누어 걷기로 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구를 떠올리며, 좀 더 가까이서 작은 것 하나라도 음미하고 걷기로 마음먹었다.

마음먹은 오늘의 종착지 종달초등학교 앞에 차를 세웠다. 말미오름을 향해 걷는데 빈 밭도 있고 무를 심었다 수확한 밭도 있다. 어릴 적 등하굣길에 배가 고파 무를 뽑아 먹던 생각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왔다. 안내소에서 올레 가이드북을 사고 간단한 안내도 받고 1코스 출발 도장을 찍는 손에 왠지 모를 힘이 들어갔다. 마치 완주를 다짐하는 비장한 각오라도 하듯이.

말미오름으로 오르다보니 운동기구를 설치해 놓은 데도 있고 재선충병으로 베어낸 소나무 그루터기도 군데군데 보이고 듬성듬성 ‘볼래낭’, ‘삼동낭’이 보여서 그에 얽힌 옛 추억들을 떠올리며 간혹 이 열매들을 따 먹기도 하면서 올라가다보니 어느덧 말미 오름 정상이다.

지미봉, 식산봉, 우도, 일출봉은 물론이요. 인근 마을과 드넓은 농토가 펼쳐져 있다. 내 눈에 들어오는 이 모든 것이 내 것인 양 순간이나마 마음이 매우 부유하고 흡족하다. 삶의 터전인 밭들은 저마다 다른 모양과 색깔로 개성을 드러낸다. 모두가 자기가 이 지역 삶의 1등 공신인 양 으스대는 듯하다.

순박하고 정겹게 사는 사람들이라 그들의 사는 집들도 서로 마주 보기도 하고 도란도란 벌여 있는 모습들이 조화를 이루어 참 아름답고 정겹게 느껴진다. 잠시 쉬면서 커피와 사과도 한쪽씩 나누어 먹었다. 친구가 가져온 과자랑 초콜릿도 나누어 먹다 보니 불현듯 소풍 추억이 되살아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도시락 하나와 어렵사리 마련한 돈 4원을 누나에게 주면서 같이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해서 신이 나서 학교에 왔다. 그런데 학교에 와보니 소풍 장소가 달라 갈림길에 다다르자 누나가 ‘밥을 가져 갈래 돈을 가져 갈래’라고 물어서 나는 순간 어린 나이에도 잔머리를 굴려 그렇게 먹고 싶었던 홍시감이나 사탕이라도 사 먹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으로 돈을 택했다.

운동회날 그렇게 많던 장사꾼이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친구들은 다 도시락을 꺼내어 먹는데 홀로 슬픔의 눈물을 흘렸던 이야기를 꺼내어 한참 웃었다.

다시 일어서서 굽이를 돌아오니 알오름으로 오르는 길목에 섰다. 예전에는 저쪽으로 길이 있었는데 몇 년 전 불미스러운 사고로 그쪽 길은 폐쇄하고 보다 가깝고 시야가 비교적 확보된 이쪽으로 길을 새로 냈다고 동행한 친구가 설명한다.

알오름에서 내려오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산기슭에서 농로를 따라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종달초등학교 앞에 다다랐다 1만원씩 갹출해 조개죽에 막걸리 한 잔을 곁들여 먹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예정대로 우리는 올래 1코스 중 절반 하프 올레를 걷고 흡족한 마음으로 다음 절반을 기약하며 집으로 향했다.

한 번에 1코스를 완주하면 어떻고 두 번에 나누어 완주한들 어떠리. 시간도 코스도 구애받지 않고 진정 자유롭게 ‘놀멍 쉬멍’ 천천히 걸을 수 있는 것이 올레 걷기의 또 다른 매력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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