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학부모 특강 시간 서두에 “‘놀다 가도 돼요?’와 ‘놀다 갈게요.’ 의 차이가 뭘까요?” 하고 질문을 던진다. 학부모들이 순간 멈칫하며 대답을 망설인다. ‘우리 아인 이럴 때 뭐라고 말하나요?’ 보충 질문을 했더니 “‘놀다 가도 돼요?’ 하죠.” 대답하면서 ‘뭐가 문제지?’ 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럼 ‘놀다 갈게요’와 ‘놀다 가도 돼요?’ 중 어느 말이 좋을까요? 했더니 ‘놀다 갈게요.’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표정이다.


▲아이가 ‘놀다 가도 돼요?’라고 했을 때


무조건 ‘안돼.’라고 한다면 아이 마음은 어떨까? 엄마 때문에 친구와 놀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집에 들어오는 표정부터 불만이 가득할 것이다. 그 다음 학원이나 학습지 숙제를 해도 효과적이지 못하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일언지하에 안 된다고 한 것에 대해 부모는 미안한 마음에 눈치를 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제대로 알찬 시간을 보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엄마의 감시와 지시 속에 일상을 보내느라 주도적이지 못한 시간들로 하루하루가 지난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무심코 ‘그래.’라고 대답했다고 치자. 방과 후 아무 일도 없는 일정이라면 그나마 괜찮지만 날마다 계획 없이 집에 오는 시간을 뒤로 미루고 놀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릴 때 습관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거기다 학습지 선생님이 한 시간 후에 집에 올 예정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차’하지만 이미 아이는 연락이 안 된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혹시’ 아이가 그 시간은 기억하고 와줄 거라는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기다려본다. 하지만 우리의 아이들은 마치 제 세상 만난 것 같이 노느라 그 시간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다.


실컷 놀고 들어온 아이에게 ‘학습지 선생님 오는 날인데 늦게 오면 어떡하니?’ 하며 한마디 했더니 당당하게 바라보며 하는 한 마디 ‘엄마가 놀다 와도 된다며?’뿐이다. 그러니까 허락하는 순간 모든 책임은 부모에게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자녀교육은 결국 캥거루족의 서막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허락을 물어올 때, 부모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된다’와 ‘안된다’가 아니어야 한다. 자녀의 삶의 모든 순간을 부모 허락 하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바꾸어야 한다. 이런 삶이 지속된다면 자녀는 수동적인 사람이 되어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은 부모에게 있고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의 인생까지도 부모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결론이 된다.


그렇지 않고 불만이 포화상태에 이를 때 쯤 사춘기가 된 자녀는 어느 한 순간에 반항적인 모습을 하며 부모와 갈등상태로 치닫게 될 수도 있다. 어느 한 쪽도 부모나 자녀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 자녀가 조금이라도 어릴 때 미리 그런 상황을 인지하고 한 마디 말에서부터 주도적이 되도록 이끌어주는 부모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