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의 사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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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철 사회부장
제주 출신 강기봉 소방교(29)는 지난해 10월 태풍 ‘차바’로 침수된 울산 회야강변에서 꽃다운 나이에 순직했다. “고립된 차안에 사람 2명이 타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순간, 갑자기 불어난 강물이 그를 덮쳤다.

급류에 맞서 안간힘을 쓰며 주변의 나뭇가지를 필사적으로 붙잡았으나 결국 물에 휩쓸려 실종됐다. 동료 대원 2명은 전봇대 등을 붙잡고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났다.

강 소방교는 실종 11시간 만에 강기슭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임용 1년 6개월 신참인 그는 부상자를 응급치료하는 구급대원이었다. 구조대원이 부족해 대신 구조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었다.

고인의 아버지 강상주씨(63)는 31년간 소방공무원을 역임하다 소방령으로 정년퇴임했다. 강씨는 “안타깝지만 그래도 119라면 당연히 남을 구하러 다니는 게 직업이니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2014년 7월 서귀포시 한 단주점에서 불이 났다. 강수철 소방령(48·동홍119센터장)은 비번이었지만 관할구역의 화재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혹시나 남아 있을 생존자를 찾기 위해 맨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그는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그는 바닥에 널려 있던 전선줄에 걸려 넘어졌고, 쓰고 있던 공기호흡기가 벗겨져 참변을 당했다. 22년 베테랑 소방관의 영결식에서 동료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했다. 남들이 살려고 빠져나올 때 소방관들은 사명감 하나로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미국 9·11 테러 당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오는 사람들의 물결을 거슬러 무너지는 빌딩 속으로 뛰어든 사람들이 있었다. 소방관들이었다. “왜 가느냐”는 물음에 한 소방관은 “내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소방관 347명이 순직했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라고 시작하는 ‘어느 소방관의 기도’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타인의 목숨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려는 사명감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 1위는 소방관으로 뽑혔다.

미국 초등학교에선 직업교육을 할 때 가장 먼저 초대를 받는 게 소방관과 소방차다. 어릴 적 빨간 소방차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을 대다수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제주지역 소방관들의 명예와 긍지에 먹칠하는 일이 벌어졌다. 검찰이 소방장비 납품 비리에 대해 수사를 벌인 결과, 소방관 102명이 연루됐기 때문이다. 도내 전체 소방관 704명 중 14%가 부도덕한 소방관으로 추락해 버렸다.

편취액이 500만원 이상인 9명은 정식 재판에 회부됐고, 500만원 미만인 5명은 약식기소 됐다. 검찰은 비리 사건에 연루된 소방관 88명도 감사위원회에 비위를 통보하기로 했다. 현직 소방관들이 무더기 징계에 내몰리는 유례없는 일이 벌어졌다. 소방장비 입찰 및 결재 과정에서 비리를 묵인했거나 감독을 소홀히 한 것은 물론 검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점에 대해 실무자부터 고위 간부까지 연대 책임을 물은 것이다.

납품업자와 짜고 허위 세금계산서를 주고받고, 구매대금을 부풀려 돌려받는 등 편취한 돈은 대부분 부서 회식비나 각종 행사비 등으로 사용됐다. 이런 경비가 장비 납품과정을 통해 조달됐다. ‘관행’이라고 하지만 수년간 이어져 온 ‘탈법’이었다.

물론 억울한 점도 있다. 관할 의용소방대가 단합대회를 하면 10만원을 찬조하는 게 불문율이라고 했다. 도내 의용소방대는 68개 대 2060명에 이른다. 의용소방대의 사기진작을 위해 행사비를 지원한 것이지 개인이나 조직의 사리사욕을 위해 착복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납품업자와 유착했다는 점에선 변명할 여지가 없다. 목숨을 걸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던 사명감이 부끄럽지 않도록 납품업자와의 유착관계를 반드시 끊어야 한다. 그리고 잃어버렸던 명예와 긍지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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