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과 미스 킴 라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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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관광영어학과 논설위원

요즘 숲에 가면 파랗게 산수국이 피어 있다. 옛 어른들은 ‘도체비’꽃이라고 불렀다는데, 그늘 속에서 섬광처럼 반짝이는 꽃 빛이 사람을 홀리는 듯해서 도깨비 같은 미지의 세계와 연결시켰던 것인지. 가장자리 가짜 꽃잎들 안쪽에 뭉쳐 있는 숱한 작은 꽃무리는 어떤 보석세공도 따를 수 없는 섬세함과 영롱함을 지닌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에 자생하는 야생 수국을 영국 식물학자가 변형시킨 수국이 우리 주변에 다양하게 꽃핀다. 개량된 수국들은 더 푸짐하고 화려하게 ‘꽃 공’을 이룬다. 온실 재배까지 해서 이들은 사시사철 우리 곁에 있지만, 숲의 정령을 연상시키는 힘은 없다.

라일락도 정향, 수수꽃다리 등으로 불리던 우리나라 토종꽃나무가 외국으로 반출되어 다시 수입된 것이라고 한다. 1947년 미 군정 당시 미국인 식물학자가 북한산에 자생하는 털개회나무 12개를 채집하여 미국에 가져가 개량하고, 한국에서 자신을 도왔던 여직원의 성을 따서 ‘미스 킴 라일락’이라고 이름을 붙여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이다.

빨리 피고 추위도 잘 견디며, 꽃을 오래 유지하는 ‘미스 킴 라일락’은 시장을 점령하고, 1970년대에 우리나라로 역수입되어서, 종자 주권 상실의 대표적인 예라고도 한다. 요즘은 라일락의 원래 조상을 찾아 복원시키는 일이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꼭 이런 일 때문은 아니겠지만, 원래 우리의 것은 작고 초라하며, 서구를 통해 들어오는 것은 크고 화려하다는 인식이 우리 속에 암암리에 자리 잡아서, 우리는 묘한 열등의식을 지니는 것 같다. 자기 자신까지 품종개량을 꿈꾸는 듯이, 조상에게 물려받은 모습 대신 깎고 덧붙이면서 이국적인 외양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보면.

또 과학이나 기계문명에 월등히 앞선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우리들의 심성도 왜곡되고, 물질적 부를 추구하는 욕구가 더욱 거대해져, ‘인’이나 ‘의’라는 전통적 유교 가치관이 경시되고, 우리 삶에 미미하게라도 남아있던 소박함이나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싹 쓸어가 버린 것이 아닐까.

백인 위주의 관점을 당연한 듯이 따르면서 백인의 시각으로 세계를 포함하여 우리자신을 보고 있지는 않은지. 백인들이 침략해서 정복한 나라의 원주민들을 미개한 야만인이나 이상한 풍습을 지닌 열등한 족속으로 취급했던 것을 그대로 따른다든지, 우리의 역사를 제국주의자들의 시각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폭력과 배신이 난무하는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그 엽기적인 짜릿함에 반하여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죄의식도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 크게 나쁜 짓을 해도 법만 잘 다루면 괜찮은 결과에 이르는 것은 그런 허구에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 현실에서도 나타난다. 법이 오히려 나쁜 짓을 별것 아닌 것으로 만들어 주는 이상한 장치로 작용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법만 잘 다루어서 걸리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마음 가짐이 자리 잡고, 그 결과 청소년이나 관리나 다들 심각한 범죄를 가볍게 저지르는 것이 아닐까.

제어할 수 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처럼 사회의 비인간적인 흐름 속에 개개인의 개성이나 창의성, 수평적 사고방식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 것 같다. 그런 일을 당한 사람들은 차라리 조국을 떠나기로 하고, 난민으로 인정받아서 외국에 난민 신분으로 입국하려는 시도도 한다. 이들은 정의가 외면당하고 개인의 불가피한 사정이 고려되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점점 좁아지는 지구촌에서 보편성을 받아들이면서도 우리 땅의 자연과 문화의 고유한 개성과 아름다움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산수국 같은 야생이 아직 살아있는 들과 숲을 거대 자본이 점령하지 않도록 지키는 것도 그런 과제 중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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