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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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명상가

부인과 딸을 나 몰라라 하고 다른 여인과 살림을 차린 채 몇 십 년을 살다가 돌아가실 때가 돼서야 뒤늦은 참회로 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분이 있었다.


병원에 가보니 부친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지나간 세월을 탓하기는 시간이 너무 흘렀고, 그래도 연민이 남아있어 아버지라고 늙고 초라하게 돌아왔지만 잘 해드리자는 마음에 간병을 해드렸다고 한다. 그 후 아버지는 죽음을 맞이하였고, 외가식구들에 양해를 구해 그쪽 선산에다 묘를 써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서 자기는 나비가 되어 훨훨 날고 싶다며 화장을 해 고향에 뿌려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원하는 대로 해주었더니 그날 꿈에 나비가 찾아와 한참을 머물더니 사라졌으며 그 후에는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이다.(죽어서도 양심은 있나보다.)


사실 나는 겁이 많아서 자동차 운전을 못한다. 그러면 어떤 이들이 그런다. 귀신도 불러내고 야단도 치고 대화도 하시면서 뭘 무서워하냐고 한다. 아니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나는 그들과의 대화가 보통 사람들과의 대화와 다르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모든 귀신들이 머리를 풀어 헤치고 피를 흘리면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살아생전에 가장 빛나는 젊은 날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육체가 없는데 형태가 있다는 것조차 모순이다. 대상을 청해서 불러내면 그 때 자신을 보여주는데 나는 말을 편하게 하고, 그들은 반드시 경어를 써주니 두려움은 잠시 곧 안정을 찾는다. 만약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누군가가 대답을 원하면 언제라도 알려줄 수 있는 습관으로 봐도 무방하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부름에 응해주며, 하고 싶은 말이나 듣고 싶은 것들을 전해주고, 잘못된 오해나 서운함·야속함에 대해 합의점을 찾아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특이한 점은 자살을 한 영혼들은 자신을 나타내기를 꺼리며 잘못된 선택에 대해 크게 후회하며 다음 생에도 이런 삶이 반복될까봐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철저히 혼자다. 그리고 타인에 의해 원하지 않는 죽임을 당한 이들은 항시 원인 제공자와 함께 나오며 복잡한 연결고리로 엮여 있다.


어리석은 복수의 연속이다.


영혼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이 없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현재를 살고 있는 이 들과의 영적 대화도 가능하나 금기시 하고 있으니 궁금한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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