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교육의 메커니즘과 사회적 문화관습은 시간의 흐름속에서 변화를 생산해 낸다. 우리는 이를 역사 발전으로 보고 있다.

한 가지, 인격 수양만큼은 가정과 학교 교육에서 만들어진다. 여기서하고 싶은 말은 품격있는 예절문화에 대한 것이다. 한국의 예절문화는 여러 세월 동안 한국사회를 건설한 고독한 군중이라 말할 수 있겠다.

미국 생활을 통해 본 미국 청소년들의 시민들을 향한 예절은 연속적이다. 빌딩 엘리베이터, 버스 안, 여러 사회 공간에서 인사를 깍듯이 올린다. 이들에게 항상 먼저 타라는 예(禮)를 잊지 않는다.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지난주 함덕에서 출발하는 버스 안에서 만난 해병대 일등병이 보여준 예의범절에 관해 말하고 싶다. 관광객이 붐비는 해수욕장 주변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많았다. 일단 자리를 차지하면 양보는 없다. 다음 정거장에서 나이가 든 여성 한 명이 버스에 올랐다. 자리를 못 찾은 여 승객은 뒷 자리에 걸어가 서 있었다. 이 모습을 본 해병대원은 그분을 자기 자리에 안내했다. 손님은 해병대 일등병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긴다. 해병대의 바로 뒷좌석에 앉은 나는 그 군인에게 참 멋있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군사훈련 시 커리큘럼 역시 새롭게 편찬된 상태에서 젊은 훈련병들의 인성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나는 제주도에서 자가용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정비문제, 보험, 수리, 교통문제로 인한 고민을 덜 해도 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자동차가 없으면 발이 묶여 할 일을 못 한다. 제주도 생활에서 좋은 점은 편리한 대중교통 서비스이다.

한국의 대중교통 노선은 선진국처럼 잘 짜여 있다. 버스를 이용하는 연령층의 폭도 넓다. 나는 건강상의 이유로 서 있기를 좋아한다. 학생들로부터 자리를 양보 받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렇다고 자리를 양보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도 아니다.

나는 학생들이 늦게까지 학원, 또는 학교에 있다가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게임에 몰두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이들에게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거니와 하물며 자리 양보 또한 어려울 수 있다.

어쩌면 학생들에게 인성에 대한 올바름을 요구하기 전에 한국의 교육현장을 먼저 고발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과연 버스에서 학생들이 스마트폰으로 얼마만큼의 지식을 얻고 있는지도 심각하게 분석, 조사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스마트폰으로부터 넓은 지식을 보급받는다면 할 말은 없다. 단지 복잡한 버스 안에서 오락에 접근한 취미라면 귀중한 시간 낭비다.

우리 세대들이 학교 다닐 때는 지금처럼 경쟁과 강박관념에 지배된 사회가 아니었다. 당시 한국의 국토면적은 지금과 같지만 인구밀도는 지금의 ‘반’ 정도였다. 사람들이 호흡하는 생활공간은 넓었고, 양보는 미덕이었다. 지금의 환경 여건상 학생들에게 이러한 예절문화에 대한 요구는 이미 그들의 관심 밖의 일이다.

우리는 해병대 일등병이 젊은세대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지 잘 지켜보아야 한다. 해병대 일등병처럼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이 사회를 이끌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건강한 국가와 사회발전은 개인의 힘으로 만들어 내기는 어렵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책임진다는 인식으로서의 ‘팀워크’이다. 무질서한 사회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자유방임도 차단해야한다. 우리는 이러한 해병대 일등병의 존재를 환영해야 한다.

제주는 관광산업으로 먹고 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