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오조리 봄은

바당애기 혼자

집을 지킨다

 

얼마나 외로우면 소라껍질에 뿔이 돋는가

그 뿔에

송송

젖 부른 어미의 숨비질이 뜨는가

 

왜, 바당애기는

“아버지”란 소리 한번 못해 봤는지

 

말하지 마라

말하지 마라

반평생

호-이 호-이

숨비질 소리만 질긴 뜻을

말하지 마라

 

제주도의 사월 바람은

거슬러 날라오는 소리개의

발톱

 

돌담 너머

수평선 푯대 끝

그 이름은 아직도 숨을 죽인다

 

내 고향 오조리는

소라껍질 같은

가슴이 빈 사람들만

답답한 봄을 맞는다

 

-강중훈의 ‘오조리의 노래’ 전문

   
▲ 유창훈 作 식산봉가는길.

 

일출봉에 해가 뜨면 가장 먼저 햇빛이 비친다는 마을, 오조리.

 

썰물녘 드러나는 갯바위처럼 정겨운 마을.

 

제주시에서 한 시간 넘게 달려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지면에 발을 내딛는 순간, 훅하고 열기가 올라왔다. 바다가 보였다. 일출봉이 보였다. 식산봉도 보였다. 모자로도 양산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뜨거운 태양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10여 분 거리의 식산봉 정상을 향했다.

 

난장식구들보다 먼저 온 것들이 있었다. 소나무, 바위, 풀빛, 물빛, 풀벌레들, 오조리 채종일 이장께서 손수 갖다 놓으신 음료수 한 박스! 닦자마자 바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는 대신 우리는 오조리의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600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쿵쿵 뛰고 있는 사연이 궁금해졌다. 매미도 그 사연이 궁금한지 한 치의 틈도 없이 울어댔다.

 

식산봉 정상의 여름과 당당히 맞서는 바람난장은 시 낭독으로 시작되었다. 이 마을 시인 강중훈 님의 ‘오조리의 노래’를 조호연 시인이, ‘억새꽃’은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지낸 강용준 극작가의 음성으로 들어 보았다. 두 편 모두 4.3을 노래한 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강중훈 시인은 4.3 때 ‘이발하러 나간 아버지를 여태껏 기다리는 소년’인 것이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마저도 한꺼번에 잃어버린 성산포 바닷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클레지오는 시인의 이 말을 듣고 일출봉은 자신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거주했던 모리셔스의 ‘모른산’과 비극의 역사가 비슷하다고 했다. ‘모른산’은 흑인노예들이 자유를 부르짖으며 투쟁하다가 400여 명이 최후를 맞이한 곳이다. 그런 인연 탓인지 르클레지오는 종종 성산포를 찾아온다.

 

   
▲ 조호연 시인이 강중훈 시인의 시 ‘오조리의 노래’를 낭송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분의 인사말은 물빛처럼 고요했다.

 

“일출봉에 해가 뜨면 제일 먼저 오조리를 비춥니다. 그때는 물빛이 거울처럼 맑고 깨끗하게 보입니다.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으나 오조리는 다섯 군데 용천수에 자기 양심을 비쳐 보며 자신을 깨끗하게 다스리며 사는 마을입니다. 바로 시인의 마을입니다.”

 

구슬땀을 뚝뚝 흘리며 말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강중훈 시인의 눈에서 아픈 역사가 읽힌다.

 

마을소개는 현춘홍님 (전 성산읍 노인대학장)께서 해주셨다.

 

“식산봉은 이웃 마을 청년들까지 모여들어 씨름을 하며 호연지기를 키웠고, 어린아이들마저 전쟁놀이를 하며 몸과 마음을 단련시켰던 곳입니다. 그러니까 식산봉은 오조리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에 큰 보리수나무들이 많아서 3, 4월이면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도 ‘마께볼레’를 따러 오곤 했었습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현 학장은 자신도 문학소년이었다고 깜짝 고백한다.

 

1951년 <6·25> 와중에 성산중학교 재학시절 문종무 국어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노산 이은상의 ‘일출봉’이란 시조를 직접 암송했다. 첫째 수는 이렇다.

 

성산 구구봉을 본대로 이르거라/ 망망한 바다 속에 돌로 둘린 산이온데/ 그 속에 한 만평이나 잡초원을 이루었네.

 

   
▲ 강용준 극작가가 강중훈 시인의 시 ‘억새꽃’을 낭송하고 있다.

이번 난장엔 처음으로 현장휘호도 곁들여졌다. 서예가 한섬 양춘희 묵연회장이 식산봉 정상의 정자에 검은 천을 깔았다. 그 위에 길다란 한지를 펼치고 맨발로 무릎 꿇고 앉아 먹물에 붓을 적신다. 그리고 용틀임하듯 단숨에 써내려 가는 여섯 글자는 ‘일출봉 점등인’이다.

 

이 글자의 의미를 굳이 풀이하자면 ‘일출봉의 스위치를 올려 해를 떠올리는 사람’이라는 뜻으란다. 아마 일출봉 기슭에 사는 강중훈 시인을 일컫는 것 같다. 이에 화답하듯 최근 장편소설 ‘사우다드’를 펴낸 강용준 극작가는 “점등인이 있으면 소등인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하여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현장휘호에는 서예가 이금옥 청묵회장도 참가하여 자리를 빛냈다.

 

한바탕 난장을 끝내고 나니 자리물회 생각이 간절했다. 식산봉을 돌아 나가는 길에 줄줄이 늘어선 황국들도 배가 고픈지 시원한 빗줄기를 그리워하는 듯 보였다.

 

 

※다음 바람난장은 7월 29일 오전 11시 안덕면 사계리 발자국 화석 앞에서 진행된다.

 

 

글=손희정

그림=유창훈

사진=허영숙

낭송=조호연·강용준

서예=양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