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알뜨르비행장에 있는 일본군 전투기 격납고.

일본군이 제주에 구축한 최대의 군사시설은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있는 알뜨르비행장이다. 지금도 전투기 격납고 19개가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등록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됐다.

1933년 초기에는 비행장 면적이 20만㎡(6만평)에 불과했다. 항공기지가 아닌 ‘불시 착륙장’이었다. 중국과의 일전을 대비해 연료 보급 또는 불시착을 목적으로 조성됐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한 후 중국과 일본의 중간 지점에 있는 이곳은 침공을 목적으로 한 항공기지가 됐다. 사세보의 해군항공대 2500명과 25기의 전투기가 배치되면서 비행장은 66만㎡(20만평)로 확장됐다.

알뜨르에서 중국 난징 폭격은 36회로 연간 600기의 전투기가 동원됐다. 비행장은 바다를 건너 공습하는 도양(渡洋) 폭격의 기지가 됐다. 1937년 11월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하면서 해군항공대는 본거지를 알뜨르에서 상하이로 옮겼다. 이후 알뜨르에는 훈련생을 양성하는 연습 항공대가 들어섰다.

태평양전쟁(1941~1945)이 발발하면서 알뜨르비행장은 264만㎡(80만평)로 더욱 확장됐다.

   
▲ 흙과 잔디로 위장한 격납고 후면 모습. 주변이 농경지로 활용되면서 3분의 1 정도가 복토됐다.

미군 폭격기 B29를 요격하기 위해 한신에 있던 제56비행전대와 사세보의 해군 951항공대가 전진 배치됐다.

특설경비 공병대도 창설돼 비행장 주변에 무기창고, 병사, 목재·금속 공장, 발전소를 비롯해 목욕탕까지 들어섰다. 58군 사령부가 제주도를 관할하면서 알뜨르비행장은 요새가 됐다. 제주도가 미군 상륙을 막는 방어기지가 돼 버렸다.

1945년 일본은 패전의 그늘이 짙어졌다. 알뜨르비행장은 양날의 칼이 됐다. 미 해군의 함포 사격에 노출된 데다 미군에게 빼앗기게 되면 본토를 폭격당할 수 있는 비행기지로 내줄 상황에 놓였다. 1945년 6월 대본영은 미군이 장악할 것을 염려해 비행장에 대한 모든 공사를 중지하도록 명령했다.

전쟁 막바지에는 비행장을 요새화하기 위해 섯알오름 동굴진지와 고사포진지가 구축됐다. 강제 동원된 주민들은 하루 종일 삽과 곡괭이를 들고 고된 노동을 했다. 격납고가 지금까지 보존된 것은 주민들이 시멘트와 자갈, 모래를 날랐으며, 특수공병대에 의해 매우 견고하게 지어졌기 때문이다. 위에는 흙과 잔디를 덮어 위장했다.

알뜨르비행장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6개 마을이 사라졌다. 마을과 농경지는 정상적인 보상 없이 일본군이 몰수했다. 비행장 부지를 3개월 만에 확보 할 수 있었던 이유다.

광복 이후에는 원소유자에게 정상적인 매입 또는 반환 조치되지 않고 국방부 소유로 이전됐다.

알뜨르비행장이 제주특별자치도에 무상 양여되면 제주평화대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다. 그런데 공군은 이곳을 훈련장 부지로 여전히 활용하는 데다 남부탐색구조부대가 창설할 경우 알뜨르비행장을 대체할 부지 제공을 요구하면서 무상 양여문제는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좌동철 기자 roots@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