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까치
  • 제주신보
  • 승인 2017.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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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혜/수필가

이사 와서 나가게 된 연무대 성당은 고풍스러웠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우거지고 한창 신록이 익어가는 오월의 성당은 한 폭의 수채화였다. 그날따라 새들은 이리 저리 포르릉거리며 희희낙락 흥에 겹다. 저들도 이 빛나는 꽃들과  푸른 잎새에 이는 싱그러운 바람과 찬란한 햇빛을 찬미하며 환희의 노래를 부르고 있나 보다. 미사시간이 되려면 한참 남았기에 나는 묵주기도를 하면서 성모 동산을 돌고 있었다.


성당 뒤편에 있는 낡은 사제관과 수녀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곳엔 오래된 플라타너스가 하늘을 덮으며 숲을 방불케 했다. 어둡고 침침했다. 집 앞 마당가에서 까치 한 마리가 쉰 소리로 죽어라 울고 앉아 있다. 바로 옆엔 부서진 까치 둥치가  나뒹굴고 있다. 까치는 내가 다가가도 피하지 않는다. 그 앞 개집 에선 요크샤 한 마리가 죽자 사자 까치를 잡을 듯 이빨을 드러낸 채 발을 쳐들고 으르렁댄다. 곧 목줄이 끊어질까 조마조마, 까치와 개의 거리는 불과 일 미터도 채 되지 않았지만 까치는 ‘죽어도 좋아,’ 그에게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보인다. 부근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베어낸 나뭇가지를 정리하고 있다. 나는 묵주기도를 멈추고 이 심상치 않은 모습을 지켜본다.


어제, 플라타너스가 고목인데다 그늘이 짙어 한 그루를 베었단다. 나무 우둠지에는 까치 가족이 살고 있었고 어미는 먹이를 구하러 멀리 나갔었나 보다. 그때 보금자리 안에서 어미를 기다리며 나와 있던 새끼 한 마리가 땅에 떨어져 그대로 죽는 불상사가 생겼다. 지켜보시던 신부님은 재빠르게 새끼를 저 편에 치워 놓으셨단다. 곧이어 어미가 당도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지금 울고 있는 그곳이 바로 둥지 밑  새끼가 떨어진 지점이었다. 다음 주일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마당은 말끔히 치워져 있었지만 어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처절히 울부짖고 있다.


 나는 열일곱 살에 엄마의 죽는 모습을 목격했다. 난산의 출혈로 두 시간 만에 눈을 감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었다. 마흔두 살에 나를 맏이로 핏덩이까지 여섯은 어쩌라고, 하느님은 그리도 무정하셨는지. 지금 저 어미 까치가 목메어 우는 이상으로 나도 일 년을 울었다. 그 기간 중 두 번을 정신을 잃었다. 엄마 없이는 못 사는 갓난아기가 무색했다. 당연히 그때 엄마 곁으로 따라가려 기회를 엿보았다. 하지만 웬일인지 엄마의 혼백을 모신 상청은 무서워서 혼자는 들어가지도 못했고 무덤이 있는 산을 오르노라면 누군가가 뒷덜미를 잡아당기며 머리끝을 쭈뼛 올라가게 했다.

 

까치는 무척 사나운 새다. 과수원에서 직박구리와 싸워 우리 과수원 텃새이던 직박구리 왕국을 물리치고 까치 나라를 세우는 것을 지켜본 일이 있다. 그때 난폭하게 꺽꺽거리며 두어 차례 싸우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이 오월에 새끼를 잃고 처절히 우는 어미 까치의 모습을 보니, 내 엄마도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저랬겠지.

 

실성하기 직전의 한 소녀가 깃광목 상복을 입고 머리에 짚으로 엮은 띠를 쓰고 엄마의 상여 뒤를 따라가며 울부짖는 영상이 어미까치의 모습과 겹친다.

 

시간은 슬픔을 풍화시킨다. 차차 나는 엄마를 잊어갔지만, 까치는 가슴에 새끼를 묻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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