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이 되면 여름은 한 고비로 들어선다.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도시의 폭서, 이 땅, 제주에도 날이 갈수록 지구의 온 난화 영향인지는 몰라도 여름이 되면 사람의 힘으로 폭염을 이겨내지 못할 불볕더위가 엄습하곤 한다. 바람 한 점 없는 도시의 여름은 여간한 인내로는 견디기 어렵다.

그 옛날 시골에서는 여름이 오면 모깃불이 피워지고 멱을 감는 아낙네들의 간지러운 웃음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멍석을 깔고 텃밭에서 따 온 수박과 참외를 먹으며 오순도순 구수한 옛 이야기로 밤을 새웠다.

낮이면 정자나무 그늘 밑에서 매미소리에 맞추어 세상사를 잊고 장기 두는 곳에 가서 훈수를 두다가 호되게 당하기도 하고 더우면 훨훨 웃옷을 벗어 시원한 평상에서 몇몇 사람끼리 바둑을 두다 보면 하루해가 기울었던 날도 있었다.

농촌의 여름은 생기가 있었다. 들녘에서나 가정에서나 즐거움이 한껏 넘쳐 보리 베기가 지나면 한시름 놓고 이웃사촌들 불러서 시원하고 물 탄 미숫가루를 대접하며 컬컬한 목을 적시기도 하다 보면 더위는 악을 써보지만 별로 위력이 없었다.

여름은 풍류객의 계절이다. 돗자리를 깔고 누워 선재를 일렁거리면서 좋은 책을 벗 삼아 읽고 있으면 세월도 잊고 선경仙境에 노닐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바람을 일으키는 선풍기가 나타나서 집집마다 유일한 피서수단이 되었는데 에어컨이 생겨나고부터는 방 한편 구석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더욱이 부채는 아예 자취조차보기 힘들 정도로 유행의 물결에 밀려나 버렸다. 구시대적인 얘기인 듯싶다. 부채의 고장은 우리나라 전주全州지방이다. 전주는 예전부터 문종이가 유명한 곳이기도 하고 부채로 격이 높은 곳이니 만큼 부채위에 한 폭의 수묵이나 수채화를 곁들이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의 예술품이 된다.

한학을 공부한 옛 사람은 부채에다 이런 글을 써넣고 다니기도 했다.

죽지상혼생자竹紙相婚生子淸風(대나무와 종이가 서로 혼인을 하니 찰떡궁합, 낳은 자식이 맑은 바람이라)하는 글귀를 가는 붓글씨로 쓰고서는 하얀 모시적삼을 입고 부채를 들고 있는 옛 어른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던 유년 시절이 있다.

또 이런 사연도 있다. 그리운 사람에게 보낸 부채는 순진한 여인의 가슴에 불을 끄라는 의미로 사용된다고 하는 의미다. 화끈하게 달아오른 가슴의 불을 식히기엔 눈물로도 모자란데 부채라야 어떻게 끌까마는 그래도 약간의 위안은 될 것이니 무의미하지 않으리라.

며칠 전의 일이다. 전남 나주 지방, 신병으로 입원해 있는 어느 요양병원을 찾은 적이 있다. 이곳은 아내가 우울증으로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이다. 병원 가는 길에 광주 시내 한 마트에 들러 많은 선물 꾸러미를 사들고 나중엔 태극기가 그려진 멋진 부채 두개를 사들고 가서 아내에게 건네주었다.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의미도 있었지만 여름날 땀방울을 뻘뻘 흘리는 아내를 위하고 여름 한나절 부채를 들고 서 있는 여인에게서 아름답고 고귀한 옛 모습을 찾기 위해서다.

두메산골인 이곳은 이른 아침이 되면 “뻐꾹 뻐꾹”구슬프게 뻐꾸기 우는 울음소리가 구슬프게 가슴을 때린다. 고향 제주에서 들어보지 못하던 새소리다. 아내가 기뻐하며 그렇게 좋아 할 수밖에 없다.

뙤약볕이 내려쬐는 한 낮이면 선풍기와 에어컨의 바람에 부채는 뒤로 밀려나고 추억의 되새김만 하고 있다. 여름이 와도 더위를 모르고 사는 현대인에게는 부채는 구시대의 유물로 보일지 모르지만 가끔은 이렇게 서로를 사랑하는 연인에게 건네줌은 한 여름날 부채를 활짝 펴고 여인의 미소 짓는 모습에서 나오는 은근함이 그리워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