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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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기/시인

“어머니! 뚝배기에 소금 어느 정도 넣을까요?


“먹어보고 적당히 넣어라”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부엌에서 주고받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며느리가 과연 간을 맞출 수 있을까?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어를 공부할 때 가장 애먹는 말이 ‘시원하다’와 ‘적당히’라 한다. 공감이 간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도 시원하다. 뜨거운 욕탕에 들어가서도 시원하다. 미운 사람 넘어져도 시원하다이니 이 말을 어찌 배울까.


‘적당히’란 말도 애매모호하기는 ‘시원하다’라는 말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이 말에는 ‘정확히’란 뜻으로도 쓰이지만 그와 정반대로 ‘어정쩡하다’ ‘막연하다’란 뜻으로도 쓰인다. 참 두루뭉실한 말이다. “주말이니 근무는 적당히 하고 휴식을 취하게”라고 할 때의 ‘적당히’와 “페인트를 섞을 때 흰색과 녹색을 적당히 넣어라” 할 때의 적당히는 상당히 다르니 ‘적당히’의 뜻은 적당히 아는 게 편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정확한 수치나 관념보다는 의미확대가 많은 어휘를 사용하기를 좋아하는 민족인 것 같다. 어쩌면 이런 풍토는 융통성 있게 여유를 주는 문화인지도 모른다.


“소금 작은 숟가락으로 하나 넣어라”는 매우 정확할지는 모르지만 며느리의 자기만의 음식 맛을 내는 데는 상당한 제한이다. 그러나 적당히 넣어라 라고 말하면 며느리는 여러 번 간을 맞추며 자기만의 맛을 찾으려 노력하고 드디어 자신의 맛을 찾아낼 것이다.


“시청 가려면 어느 쪽으로 얼마나 가야합니까?”


“오른쪽으로 돌아서 쭉 가다가 왼쪽으로 한참 가세요.”


정확하게 몇 미터 가야한다고 말하는 사고가 과학적인 서양 사고이고, ‘쭉’ ‘한참’ 이런 우리의 사고는 인문학적 여유의 사고인지 모른다. 쭉 가고 한참 가는 게 시간은 더 걸릴지 모르나 찾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보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정권이 바뀌면 앞 정권은 독재이고 무능하다 하여 지워버리려 한다. 그러나 사드, 핵발전, 증세, 적패청산 등 새정부의 정책을 보면서 제왕적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독재적 발상을 다시 접하며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가장 확실한 진리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인데 공짜 천국인 정부를 보며 걱정이 앞선다.


시작은 적당히(정확) 하고 마무리는 적당히(대충) 하는 정부의 모습을 다시는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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