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大河처럼 도도히 흐르는 제주인물…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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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관·유배인·민초 등 3000여 명의 삶을 재조명
제주 일제침탈사 127회 연재…제주도학 정립 기여

“당신은 타인의 이름 몇 명을 기억하십니까.”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외우고 불러준다면 어쩐지 기분이 좋다. 자신에 대한 관심이라며 유쾌하게 생각한다. 여기에 그 이름이 기록으로 남는다면 그 자체로 역사다. 사실 역사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탐라 시대부터 현대까지 제주와 관련된 인물 3000여 명의 생애를 기록한 ‘제주인물대사전’은 제주 인물의 대하실록(大河實錄)이다. 이 역작의 저자는 제주 향토문화 기록에 평생을 바친 김찬흡(金粲洽) 옹(85)이다.


이 대하실록에는 탐라 시대부터 현대까지 제주 출신으로 역사적 발자취를 남긴 인사는 물론 제주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 목민관, 제주에 대한 작품을 남긴 인물, 유배인, 제주와 관계가 깊은 사람 등이 등장한다. 고려ㆍ조선 조정에서 제주를 다스리기 위해 파견했던 경래관(京來官)들도 있다.


어찌 이들만 주목했겠는가. 나름대로 굽이굽이 인생길을 돌고 돌면서도 자신의 길을 걸어간 민초들과 주류에서 소외됐던 의사자, 여인들도 있다. 제주인의 이야기를 담은 만인보(萬人譜)인 셈이다.
‘설문대할망’이나 작품의 등장인물인 ‘배비장’ 등 제주 신화ㆍ전설의 주인공들도 이름을 올렸다. 고려시대 목호(牧胡ㆍ고려시대 제주에서 말을 기르던 몽골인)들도 있다. 사전에는 해당 인물의 사진이나 작품, 유묵 등도 함께 실어 독자의 관심을 끌었다.


탐라시대 이후 그렇게 제주는 여러 인물들이 그린 삶의 궤적이 대하(大河)처럼 도도히 흘렀다. 일제강점기, 8ㆍ15 해방, 제주4ㆍ3사건, 6ㆍ25한국전쟁 등 역사의 큰 물줄기에서 그들의 삶도 요동쳤다.

 

▲ 김찬흡 선생이 펴낸 제주인물대사전

제주인물대사전은 개인이 뿌린 ‘축적의 시간’의 결과다.


김옹은 어린 시절부터 제주의 인물에 관심이 많았다. 1945년 조국이 해방되어 한글을 배우면서 주변에 책이 보이기만 하면 열심히 읽었다. 신영철의 ‘古時調新釋’ 김구의 ‘白凡逸志’ 이극로 ‘苦鬪’ 이범석 ‘血戰’ ‘여운형재판기’ 등을 이 때 접했다. 그러나 찾고자 하는 사람은 없었다. 제주인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1947년 제주농업학교(6년제)에 들어가 김두봉(金斗奉) ‘제주실기’와 김석익(金錫翼) ‘탐라기년’을 간신히 숙독하면서 제주목사ㆍ제주판관ㆍ정의현감ㆍ대정현감을 접하면서 가슴이 뛰었다.


김옹은 20대 대학생 시절부터 제주인물에 본격적으로 접근했다. 수십년 간 제주섬 구석구석을 누비며 제주의 역사, 지리, 민속, 교육, 관광, 인물 등 향토문화 자료를 찾아다녔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는 국회도서관과 국립도서관에 들러 자료를 얻었다. 자녀들도 힘을 보탰다. 장남이 국회의원 보좌관을 하는 동안에는 국회도서관에 있는 제주 관련 자료를 축적했다. 다른 자녀들은 사전에 실린 인물이나 역사적 현장 등을 담은 사진 등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교직에서 정년퇴임한 이후에는 고장의 향토문화를 바르게 널리 알리겠다는 의지 하나로 그동안 부지런히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20세기 제주인명사전’(2000년), ‘제주사인명사전’(2002년), ‘제주항일인사실기’(2005년), ‘제주애월읍명감’(2011년) 등의 저서를 내놨다.


이어 그간 저서를 바탕으로 수집한 자료를 총망라해 ‘제주향토문화사전’(2014년)을 발간했다. 그리고는 ‘제주고금인물사전’을 대증보판 성격으로 역작인 ‘제주인물대사전’을 내놓았다.


특히 김옹은 1991년 9월 28일부터 일제 강점기 제주도에 대한 일본의 침략적 행정과 정책의 변천사를 고찰한 기획물인 ‘제주도의 일제침탈사’를 신문 지면에 장기 연재했다. 김옹은 이 기획물을 1994년 8월 20일까지 무려 127회에 걸쳐 꾸준히 연재함으로써 제주도학(濟州道學)의 정립에 크게 기여했다. 김옹은 이 기획물 연재와 관련해 “일본이 태평양전쟁의 패망에 맞춰 한민족에 대한 침탈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모든 자료를 인멸해버린 상황에도, 경향 갖지에서 수집하고 발굴한 자료를 통해 ‘제주도의 일제침탈사’로 정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옹은  “이런 일은 내가 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있었다”며 “이런 향토 인물사전이 나온 지역이 없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제주는 말이나 키우는 곳이 아니라 이렇게 인물이 많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서 한평생을 바쳐 이런 작품을 만들어 냈다”며 자신의 역작이 후손들에게 제주인으로서 자긍심을 심어주고 각종 연구 등에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옹은 “제주인물대사전이 제주新보를 통해 도민과 독자들을 찾아가게 돼 기쁘다”며 “8월 1일은 제주도가 도(島)에서 도(道)로 승격한 날인 만큼 제주인물들의 이야기도 이날부터 시작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 제주도, 濟州島에서 濟州道로 승격

1946년 8월 1일 제주도(島)는 도(道)로 승격 됐다. 당시 동아일보(1946년 7월 13일자)는 이와 관련해 이렇게 보도했다. “제주도(濟州島)를 전라남도(全羅南道)와 분리해 ‘일도(一道)’로 승격시켰는데 12일 군정청 공보부에서 다음과 같은 발표가 있었다. <공보부 특별발표> 장기간에 걸친 일본의 조선통치의 잔재가 하나 소멸되었다. 제주도(濟州島)가 일도(一島)로서 목사(牧使)의 지배를 받았던 왕조시대 이래 처음 제주도(濟州島)는 다시금 본래의 자체로 돌아간 것이다. 군정청법령 제 94호에 의하여 제주도급부근제소도(濟州島及附近諸小島)와 추자군도는 분리된 ‘일도(一道)’로 일제시대 지배를 받고 있는 전라남도 관할로부터 이탈된다.”

 

▲ 김찬흡 선생이 지난 31일 제주시 삼도동 자택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찬흡 선생은 누구


=제주시 애월읍 출신으로, 제주대학 국어국문학과(1회)를 졸업한 후 교육계에 투신했다. 제주제일고 교감, 우도중ㆍ한림공고ㆍ제주사대부고ㆍ서귀포여고 교장, 북제주교육청 교육장, 제주도 교육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제주도교육위원, 북제주문화원 초대 원장, 제주도 문화재위원, 독립기념관 사료조사위원, 제주도유형문화재 제1분과위원장, 제주도교육의정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나의 장정長征은 옳은 길이었다  -南軒 김찬흡-


참으로 나의 장정은 험악險惡하고 고난의 길이었다. 그러나 가야하지 쉬지 않고 쉽지 않는 길을 달려야만 했다. 장정의 제1차 작업이 재작년 5월에 ‘제주향토문화사전’이란 책의 출간, 호평을 던져주는 판에 용기가 배가되었다. 옛 사람의 시에 ‘久戍人偏老:오래도록 변방을 지킨 병사는 늙어 기울어져/長征馬不肥:긴 정벌 길에 마구 달렸던 말은 여위었네.’라는 글은 나의 심회心懷를 헤아리는 듯하다. 이어 제2차 작업은 이 땅 섬 위에서 크게 숨을 쉬던 인사들을 열전列傳에 등장시키는 장정이었다. 물론 앞서 졸저拙著 ‘20세기世紀제주인명사전’, ‘제주사濟州史인명사전’, ‘제주항일인사실기’, ‘제주 애월읍涯月邑 명감名鑑’등이 있었기에 이를 장정 목전에 두고 오늘의 이 사전事典을 가능하게 하였다.


아마 지역 인물사전으로서 첫 작품이요, 크게 모자람이 없는 건강한 옥동자라고 자부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섬은 과거 뒤졌던 문명과 문화를 앞으로 보다 더욱 앞서고 빛내야한다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래서 처음 ‘濟州鄕土文化事典’의 발행이며, 문화의 창조 주체는 곧 인물이란 사실을 알게 되어 이어 이제 ‘濟州人物大事典’을 상재上梓하게 되었다. 옛글에 ‘가빈家貧에 사양처思良妻 국란國亂에 유충신有忠臣’이라 하지 않았나! 그래서 나는 제주여성다운 여성을 찾는 심정으로 향토의 의병이나 항일인사를 찾는데 시간과 정력이 필요했고 노력했다. 더구나 그와 상대립되는 반역한 사람을 찾아내려는데 너무나 피곤했다. 피곤해도 반드시 하고야 말 중대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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