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 감동을 주는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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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대통령이 동북아 중심 국가로서의 평화와 번영의 비전을 제시하면서 취임하였다. 더구나 그는 상고 출신 한 변호사로서 정치 입문 불과 십 몇 년만에 대통령이 되었으니, 그를 지지했건 아니했건간에 이 취임식은 감동적인 사건이었다. 얼마 전 신문기사는, 대통령 당선자가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한 지방대학 총장과 환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것도 꽤 감동적이었다. 아마 노무현 대통령이 앞으로 그러한 감동적인 사건을 자주 만들어낼 것으로 생각되어 즐거웠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감동적인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다. 그 첫째는 아마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르겠지만, 고 정주영옹이 서산농장에서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어 이북으로 가던 그 사건이었을 것이다. 살진 황소들을 실은 트럭 행렬이 수십 년 동안 사람들도 넘나들지 못했던 휴전선을 넘어 북쪽 땅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고도의 연출자가 만들어낸 감동적인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그것은 민족의 화해와 통일이라는 역사적인 상징성을 가지면서 한편 굶주리는 형제들을 돕는다는 매우 절박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이라는 데서 더욱 감동적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정말 저 영감 아이디어 하나 좋구나. 대통령을 하겠다고 하더니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을 해냈구나!”

다음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과 평양의 한 비행장에서 포옹하는 장면일 것이다. 그 며칠 동안 두 정상은, 서로 망하기를 바라면서 비난하고, 공격하고, 그 상대에게 유리한 말 한마디만 해도 감옥살이를 면치 못하도록 법으로 되어 있는 남북 실정에서, 서로 껴안고 축배를 들고 덕담을 나누었다. 국민들은 이것이 꿈인가 의아했다. 어느 성급한 시인은 민족의 새 역사가 바로 내일 시작되는 듯한 감격으로 시를 읊기도 했다. 앞으로 자주자주 만나자고 약속하고 헤어지면서, 우리 모두 민족을 위해 일하자고 입을 모았다.

이러한 두 정상의 만남의 결과로 성사된 남북 이산가족 방문도 감격적인 사건임에 틀림없다. 불과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에 살면서 수십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혈육들을 만나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그 정황을 보는 동포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이제는 분단의 아픔을 털고 편지도 주고받고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을 때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단된 나라의 한쪽 대통령이 다른 상도 아닌 평화상을 탄다! 시상식장에서 수상자는 민족 분단의 아픔과 그 극복에 대해 연설했다. 평화! 그 동안 전쟁에 시달려온 우리에게 이만큼 감격적인 단어는 없다. 마음이 넓은 사람들은 북쪽 위원장도 같이 상을 탔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말했다.

이런 감동적인 사건들은 작년까지 이어졌다. 월드컵 4강 진출은 빼놓을 수 없다. 16강에서 8강으로 들어갈 때부터 사람들은 감동했고 행복해 했다. 어느 주부는 월드컵 기간 내내 행복했다고 고백처럼 말했다. 좀 가슴 아픈 일이긴 하였지만, 촛불 시위도 감동적인 사건이었다.

어느 네티즌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사건은 국민의 가슴에 묘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조용히 모여든 사람들은 추워오는 늦가을 밤 서울 거리를 연약한 촛불로 뜨겁게 밝혔다. 두 소녀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한만이 아니고, 그 동안 우리가 겪었던 역사의 질곡에 대한 수많은 언어를 그 촛불로 피워 보냈다. 그것을 바라보는 세계 사람들도 아마 감동했을 것이다. 이제 이 감동은 혹 개인적인 사안이겠지만, 요즈음 노 대통령이 파격적인 인선 방침에 따라 새로운 인물들을 선택해 국가 권력의 핵심부에 포진해 놓았다. 여기에 끼인 사람들도 그들의 일생에 잊지 못할 감동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감동은 좋은 일이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것이 순수성을 잃게 될 때 폭력이 될 위험성도 간직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있었던 감동적인 사건들 중에는 퇴색된 것이 많기에, 국민들은 감동의 정치를 원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떠오르는 태양의 장엄함보다는 낙조의 그 진실과 순수를 국민들은 더 사랑할 것이다. 국민들은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의 가슴에 남아 있을 대통령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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