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반(花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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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비빔밥을 화반(花飯)이라고 한다. ‘꽃밥’이란 뜻이다. 백화요란(百花燎亂), 온갖 꽃이 불타오르듯이 피어 찬란하다 한 것과 한 맥락이다.

콩나물, 도라지, 고사리, 당근, 표고, 시금치 같은 갖은 나물과 양념해 잘 볶은 쇠고기에다 반듯하게 썬 야들야들한 녹말묵이 어우러진다. 그 위로 달걀 프라이가 얹힌다. 울긋불긋 꽃답다. 시울 헤벌어진 넉넉한 그릇 속에 화려한 꽃이 만발한다.

섞고 비비고 끓이는 것을 유달리 좋아하는 한국인들. 비빔밥만큼 한국음식의 원리에 통한 먹거리도 없을 것이다.

유래가 있다. 제사상을 물린 뒤 밥, 고기, 생선, 나물 등을 비벼 음복했던 데서 비롯했다 한다. 그믐날 묵은해의 음식을 먹어 치운다고 남은 밥에 반찬을 쓸어 넣어 밤참으로 한 데서 온 것이라고도 한다. 모내기나 추수 때 이웃끼리 품앗이하며 시간과 일손을 덜기 위해 재료를 들로 가지고 나가 비벼 먹은 게 시초라고도 하고. 모두 설득력을 지닌다.

꽃처럼 화려한 데다 식생활의 합리와 편의가 충분히 고려됐으니 참 지혜롭다.

이 비빔밥이 한국 음식을 대표하는 자리에 오른 지 오래다. 각광 받는 이유가 있다. 우선 재료의 구성이다. 건강식을 말할 때 채소와 고기의 비율을 8:2라 하는데, 비빔밥이야말로 그 비율에 근접한다. 이로써 끝나지 않는, 중요한 순서가 기다리고 있다. 고추장을 넣고 비비는 것. 오묘한 맛이 순전히 여기서 나온다.

이것으로 비빔밥의 속내를 다 들어 내지 못한다. 아무리 여러 가지 재료들을 넣었다 해도 이 재료들이 자신의 맛을 잃어버리면 안된다. 고유의 맛을 잃는다면 그것들이 비빔밥 속으로 들어갈 하등의 이유가 없었을 것 아닌가. 비빔밥의 요체다.

여러 재료를 섞어 맛깔을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그 촉매 구실을 하는 게 고추장과 참기름이다. 재료들이 갖는 본래의 맛과 그것들이 합쳐짐으로써 창출되는 상위(上位)의 맛을 제대로 내야 한다. 그게 진짜 비빔밥이다. 원래 비빔밥을 골동반(骨董飯)이라 한 게 실감난다. ‘어지럽게 섞어 만들었다’는 뜻. 그러니까 ‘섞음의 미학’를 구체화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예서 한 발 더 나아가 파격의 미학을 실현시키는 데 있다. 일단은 활짝 핀 꽃처럼 예쁘다. 하지만 예쁜 건 잠시일 뿐, 거기다 고추장을 넣고 마구 비벼댄다. 그릇에 담길 때, 애초의 아름다움이 삽시에 깨어지고 만다. 단번에 그릇 속의 질서를 파괴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도 재료들의 개성이 전체 속에 살아나는 절묘한 음식, 비빔밥!

꽃다운 밥을 받고 앉아 입에 침이 설설 끓는데, 숟갈로 휘저으며 비벼대는 손놀림이 느긋하겠는가. 다소간 잽싸고 거칠다. 한국인의 야성과 역동성이 여지없이 노출되는 대목이다.

지난번 문·트럼프 한미정상회담의 만찬 메뉴가 비빔밥이라 하므로 감회가 컸다. 품격이 있으니, 단지 우리 음식이 그런 자리에 올라 격상했다는 게 아니다. 아무리 여러 재료를 넣었더라도 자신의 맛을 잃지 않는 비빔밥의 개성이 떠올랐다. 두 나라 간의 관계가 비빔밥 속의 ‘재료’처럼 독자성을 잃지 않으면서 혈맹으로서 조화롭게 유지되리라는 기대감….

비빔밥에는 우리 문화 코드가 숨 쉰다. 섞고 끓이는 찌개, 탕, 전골 등과 맥을 같이 한다. 설렁탕만 해도 그렇다. 고기의 여러 부위를 넣어 섞고 오래 끓임으로써 새 맛을 우려내는 걸 보면 이도 비빔밥과 한 통속이다.

비빔밥의 인기가 가히 세계적이다. 우리의 기내식이더니 많은 외국 항공사들도 비빔밥을 선호하고 있다. 일본인들도 ‘비빈바’라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좋아하지 않는가.

요즘 피폐한 우리 사회가 좀 섞이고 엮였으면 좋겠다. 비빔밥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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