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근무 vs 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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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사표(辭表)는 일을 그만두겠다는 뜻을 담은 문서다. 간혹 죽을 사(死)자로 착각하기도 한다.

어느 영화에선 한자로 사(死)를 써놓고 표는 몰라서 ‘死표’라고 적는 장면이 나와 관객들을 폭소케 했다.

사표에도 자진 사표, 권고 사표, 강요된 사표 등 여러 형태가 있다. 고용 관계를 끝내는 합법적 문서이므로 퇴직금 등에 영향을 미친다. 자진해서 퇴사하거나 본인 과실로 해고되면 실업급여마저 받지 못한다.

최근 한 조사에서 사표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이 95%나 됐다. 가장 큰 이유는 ‘야근 등 초과근무 할 때’라고 한다. 고작 초과근무 때문이냐는 지적도 있지만 요즘은 과도한 근무를 심각히 여기는 모양이다. 몇 년 전 조사에서 ‘미래가 불투명할 때’를 첫째로 꼽은 것에 비하면 세태 변화가 무상하다.

▲초과근무 배경에는 법의 맹점도 한 부분 자리한다. 그 주범은 요즘 말도 많고, 사람 잡는다는 ‘근로기준법 59조’다. 1961년 법 개정을 통해 만들어진 특례조항이다. 노사가 합의하면 주당 12시간을 초과한 연장 근로를 허용한 것이다.

이 규정으로 사실상 무제한 노동의 굴레를 씌운 업종은 26개에 달한다. 해당 노동자만 450만 명이 넘는다.

주지하다시피 최근 살인적 노동시간으로 인해 안타까운 죽음이 잇따랐다. 졸음운전으로 다중 추돌사고를 일으킨 버스기사, 초과근무에 시달리다 12명이나 숨진 집배원, 한 달 간격으로 세 명이 자살한 사회복지사 등 모두가 장시간 노동의 희생자들이다.

우리나라 연평균 노동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긴 건 특례조항 탓이 크다.

▲정치권이 모처럼 발 빠른 행보에 호흡을 맞추는 모양새다. 비판 여론이 높은 근로시간 특례 업종을 축소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현행 26개에서 10개 이하로 줄인다는 것이다. 16개 업종 종사자 270만 명이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왕 하기로 한 거 근로기준법 59조를 아예 폐기하는 건 어떨는지. 그래야 장시간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을 차단할 수 있어서다.

월화수목금금금으로 통칭되는 직장문화가 회사 자랑으로 치부되는 시절도 있었다. 그만큼 세계 최장의 근로시간은 한국 경제를 일군 성장엔진이었다. 허나 일 못지않게 가정의 역할을 중시하는 요즘엔 버려야 할 유산이 아닌가 싶다.

직장인 중 가슴 속에 사표 한 장 품지 않은 이 없다. 당장의 카드값과 식구들 생각에 썼다가 찢기를 반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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